콜레스테롤이 정상인데도 심장병 위험이 높다고요?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보니 콜레스테롤도, 혈압도, 혈당도 전부 정상 범위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심장병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몸 안에는 일반 건강검진에서 잘 들여다보지 않는 두 가지 숫자가 있습니다.
바로 'Lp(a)'라는 지방단백질과 '혈소판 수치'입니다.
최근 영국의 대규모 데이터베이스인 UK Biobank를 활용해, 심장병이 없던 성인 25만 927명을 평균 13.4년 동안 추적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Lp(a)와 혈소판 수치가 따로 있을 때, 그리고 둘이 동시에 높을 때 심장병 위험이 실제로 얼마나 달라지는지, 또 흔히 쓰는 아스피린이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숫자들이 내 몸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하나씩 풀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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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a)와 혈소판, 둘이 만나면 왜 위험해질까
먼저 Lp(a)가 무엇인지부터 짚어볼까요.
Lp(a)는 콜레스테롤을 몸속으로 운반하는 지방단백질의 한 종류인데, 일반적으로 많이 들어본 'LDL(나쁜 콜레스테롤)'과 비슷하게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을 쌓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Lp(a)에는 'apo(a)'라는 특수한 단백질 조각이 하나 더 붙어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단백질 조각의 구조가 우리 몸에서 혈전(피떡)을 녹이는 역할을 하는 '플라스미노겐'이라는 물질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혈전을 녹이는 효소가 일할 자리에 Lp(a)가 가짜로 끼어들어 자리를 차지해버리면, 정작 혈전은 잘 녹지 않고 혈관에 남아있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몸이 혈전을 청소하려고 보내는 '열쇠'가 들어갈 자물쇠 구멍에 Lp(a)가 먼저 꽂혀서 자리를 막아버리는 셈입니다.
여기에 Lp(a)는 혈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성질도 가지고 있고, '산화된 인지질'이라는 물질을 함께 싣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산화된 인지질이 바로 혈소판을 자극하는 성분이기도 합니다.
혈소판은 원래 우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 서로 모여 붙어서 피를 멈추게 해주는, 혈액 속의 작은 지혈 담당 세포조각입니다.
평소에는 다치지 않으면 조용히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지만, 산화된 인지질 같은 자극을 받으면 혈관 속에서도 불필요하게 활성화되어 서로 뭉치려는 경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즉, Lp(a)가 많을수록 혈소판이 더 쉽게 자극받아 뭉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혈관이 막히는 혈전이 생길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는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험이 얼마나 올라갈까 (구체적인 수치로 보기)
이제 이 연구에서 나온 실제 숫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결과를 '위험비(Hazard Ratio, HR)'라는 수치로 나타냈습니다.
위험비란 한쪽 그룹이 비교 대상 그룹보다 특정 사건(여기서는 심장병, 뇌졸중 같은 주요 심혈관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위험비가 1.0이면 두 그룹의 위험이 똑같다는 뜻이고, 1.25라면 비교 대상보다 위험이 25% 더 높다는 뜻입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을 Lp(a) 수치(125nmol/L를 기준으로 정상/상승)와 혈소판 수치(전체 참가자 중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273×10^9/L을 기준으로 정상/상승)를 조합해 4개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 Lp(a)만 높은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25% 더 높았습니다(위험비 1.250, 95% 신뢰구간 1.118~1.325). 여기서 '95% 신뢰구간'은 이 25%라는 수치가 어느 범위 안에서 믿을 만한지를 보여주는 통계적 표현으로, 연구를 반복해도 이 범위 안에 실제 값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 혈소판 수치만 높은 경우: 위험이 약 5.6% 더 높았습니다(위험비 1.056, 95% 신뢰구간 1.005~1.110).
- 둘 다 높은 경우: 위험이 약 39.1% 더 높았습니다(위험비 1.391, 95% 신뢰구간 1.256~1.541). 쉽게 말해 둘 다 정상인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을 겪을 위험이 약 1.4배였다는 의미입니다.
즉, 두 수치가 각각 높을 때보다 둘이 함께 높을 때 위험이 눈에 띄게 더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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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위험은 서로를 폭발시키지 않지만, 꼬박꼬박 더해진다
그렇다면 Lp(a)와 혈소판이 '화학적으로 서로를 증폭'시켜서 위험이 곱으로 커지는 것일까요?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상호작용 검정'이라는 통계 분석을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상호작용이 있다는 것은 두 요인이 만났을 때 단순히 더한 것보다 훨씬 큰 위험이 생긴다는 뜻이고, 상호작용이 없다는 것은 각자의 위험이 그냥 더해지는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분석 결과, 덧셈 방식으로 봐도 곱셈 방식으로 봐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상호작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Lp(a)와 혈소판 수치가 서로를 부추겨서 위험을 폭발적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위험이 차곡차곡 더해진 결과로 '둘 다 높음' 그룹의 위험이 가장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두 수치는 서로 다른 경로로 심혈관 건강에 영향을 미치면서, 둘 다 해당될 경우 그 위험이 누적되어 나타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아스피린에 대한 탐색적 분석 결과입니다.
아스피린은 혈소판이 뭉치는 것을 억제해서 혈전을 예방하는 약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진이 하위그룹별로 아스피린 복용과 심혈관질환 발생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아스피린 복용이 심혈관질환 위험 감소와 연관된 모습은 'Lp(a)와 혈소판이 둘 다 높은' 그룹에서만 나타났습니다.
Lp(a)만 단독으로 높은 사람들에게서는 아스피린 복용과 위험 감소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연구진도 이 결과는 '탐색적(exploratory)' 분석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 결과만으로 "Lp(a)와 혈소판이 둘 다 높으면 무조건 아스피린을 먹어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로 확인이 필요한 발견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콜레스테롤이 정상인데도 심장병 위험이 있다고 하는 이유, 이제 조금 더 분명해지셨을 겁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Lp(a)와 혈소판 수치라는 두 가지 변수가 숨어있을 수 있고, 특히 이 둘이 동시에 높을 때는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1.4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로 확인되었습니다.
실생활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Lp(a)는 일반 건강검진에서 기본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심혈관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조기 심장병 병력이 있다면 Lp(a) 검사를 별도로 요청해 확인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혈소판 수치는 일반 혈액검사(CBC)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최근 건강검진 결과지를 다시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Lp(a)는 유전적으로 정해지는 수치로 알려져 있어 생활습관만으로 크게 낮추기는 어렵지만, 혈소판 수치와 관련된 염증 상태는 식습관, 신체활동, 체중 관리 등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 아스피린은 출혈 위험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약이므로, 이 연구 결과를 근거로 스스로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Lp(a)·혈소판 수치 확인과 아스피린 복용 여부에 대한 결정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한 뒤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번 연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콜레스테롤이라는 하나의 숫자만으로 심혈관 건강을 다 설명할 수는 없으며, Lp(a)와 혈소판 수치처럼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표들이 모여 위험을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본 글은 Europe PMC(PMCID: PMC13635306)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