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지방, 내 혈관을 얼마나 뻣뻣하게 만들까?
건강검진에서 "내장지방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혈관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확히 내장지방이 늘면 혈관의 '어떤' 부분이, '얼마나' 나빠지는 걸까요?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지방이 늘면 염증이 생기고, 그 염증이 혈관을 망가뜨린다"는 설명은 정말 맞는 걸까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 연구팀이 219명의 성인(평균 나이 46세, 비만이 아닌 사람과 비만인 사람 모두 포함)을 대상으로 이 질문에 답을 찾아봤습니다.
그 결과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는데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부터 내 몸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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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 탄력, 알고보면 세 가지로 나눠 잰다
혈관이 "뻣뻣하다"는 말, 사실 이걸 재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 연구에서는 세 가지 지표를 동시에 측정했습니다.
먼저 맥파속도(cfPWV)입니다.
심장이 뛸 때마다 혈관 속으로 압력 파동(맥파)이 퍼져나가는데, 이 파동이 목(경동맥)에서 다리(대퇴동맥)까지 이동하는 속도를 재는 것입니다.
긴 정원용 호스에 물을 세게 틀었을 때, 호스가 딱딱하면 물살이 반대쪽 끝까지 더 빨리 도달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혈관이 뻣뻣할수록 이 속도가 빨라집니다.
두 번째는 증강지수(AIx, %)입니다.
심장에서 나간 맥파가 몸 말단까지 갔다가 다시 튕겨 돌아오는 "반사파"가 있는데, 이 반사파가 원래 파동에 얼마나 겹쳐서 압력을 더 높이는지를 보는 지표입니다.
혈관이 뻣뻣하면 반사파가 더 빨리, 더 세게 돌아와서 이 수치가 높아집니다.
세 번째는 중심맥압(cPP, mmHg)으로, 심장 가까운 대동맥에서 심장이 뛸 때(수축기)와 쉴 때(이완기)의 혈압 차이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측정하기 때문에, 연구팀은 "셋 다 같이 나빠질 것"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하지 않고 각각을 따로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내장지방이 많을수록 정확히 무엇이 올라갔을까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체성분을 생체전기저항분석(체성분 측정기에 올라서면 몸에 약한 전류를 흘려보내 지방과 근육량 등을 추정하는 방법입니다)으로 측정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내장지방(L), 체지방률(%), 지방량지수(kg/㎡, 키 대비 지방의 양), 제지방량지수(kg/㎡, 키 대비 지방을 뺀 근육·뼈 등의 양) 네 가지를 혈관 탄력 지표들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세 가지 지방 지표(내장지방, 체지방률, 지방량지수)는 모두 증강지수(AIx)와 뚜렷한 관련을 보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내장지방: 회귀계수 β = 0.642 (95% 신뢰구간 0.172~1.112, p = 0.032)
- 체지방률: β = 0.186 (95% 신뢰구간 0.083~0.288, p < 0.001)
- 지방량지수: β = 0.333 (95% 신뢰구간 0.157~0.508, p < 0.001)
여기서 '회귀계수(β)'란, 다른 조건(나이, 성별 등)은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지방 지표가 한 단위 늘어날 때 증강지수가 평균적으로 몇 퍼센트포인트 올라가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95% 신뢰구간'은 실제 값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범위를 뜻하는데, 이 범위에 0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예: 0.172~1.112처럼 0보다 큰 숫자들로만 이루어진 범위)은 "지방이 늘어나는 것과 증강지수가 올라가는 것 사이에 우연이 아닌 관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흥미롭게도, 같은 지방 지표들은 맥파속도(cfPWV)나 중심맥압(cPP)과는 통계적으로 뚜렷한 관련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여러 변수를 동시에 검사할 때 생기는 우연한 결과를 걸러내는 보정 절차를 거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내장지방이 혈관에 영향을 준다면, 그 영향은 혈관 전체의 '딱딱함' 자체(맥파속도)보다는 반사파가 되돌아오는 방식(증강지수) 쪽에서 먼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제지방량지수(근육이나 뼈 같은 지방을 뺀 몸무게 성분)는 혈관 탄력 지표들과 독립적인 관련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즉 이번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몸무게 자체"가 아니라 "지방, 특히 내장지방"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나타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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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수치가 범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떠올릴 법한 설명이 있습니다.
"지방세포가 염증물질을 분비하고, 그 염증이 혈관 벽을 자극해서 혈관이 뻣뻣해진다"는 가설입니다.
실제로 지방, 특히 내장지방은 염증과 관련된 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 가설은 충분히 그럴듯합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 인터루킨-6(IL-6), 혈관세포접착분자-1(VCAM-1)이라는 세 가지 지표를 함께 측정했습니다.
앞의 두 가지는 몸에 염증이 있을 때 올라가는 대표적인 물질이고, VCAM-1은 혈관 안쪽을 덮고 있는 세포(내피세포)가 자극을 받았을 때 늘어나는, 혈관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 지표들이 정말 "다리"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매개분석이라는 통계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매개분석은 "A(내장지방)가 B(염증)를 거쳐서 C(혈관 탄력)에 영향을 주는가"를 따로 떼어서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장지방에서 증강지수로 가는 길에 염증이라는 다리가 실제로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이 분석은 결과를 더 안정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같은 데이터를 5천 번 반복해서 다시 뽑아보는(부트스트랩) 방식으로 검증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내장지방·체지방률·지방량지수가 증강지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다시 확인됐지만, TNF-α·IL-6·VCAM-1 중 어느 것도 이 관계를 설명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지방이 늘어나는 것과 혈관의 반사파 지표가 나빠지는 것 사이에 염증이 끼어 있다는 증거는 이번 연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방과 혈관 사이에 염증 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로(예를 들어 혈관을 직접 누르는 물리적 영향이나, 이번에 측정하지 않은 다른 생체물질)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견으로, 연구팀도 "더 다양한 생체지표와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만과 혈압, 혈관 건강이 이어지는 또 다른 증거들
이번 연구는 한 시점에서 찍은 사진과 같은 횡단면 연구라서, "내장지방이 늘면 혈관이 나빠진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일수록 혈관 반사파 지표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수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 혈관 반사파 지표가 왜 중요한지는 다른 연구들을 통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비만은 혈압 관리가 유독 어려운 '저항성 고혈압'(세 가지 이상의 혈압약을 써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상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즉 체지방, 특히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일수록 혈압 조절 자체가 더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고혈압은 알츠하이머병의 뇌 병리 소견(뇌에 쌓이는 비정상 단백질 덩어리 등)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보고들이 있습니다.
다만 이 역시 아직 결과가 일관되지는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이런 연구들을 함께 놓고 보면, 혈관의 반사파 지표(증강지수)가 올라가는 것을 단순히 "숫자 하나가 높아졌다"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 혈압 관리의 어려움, 나아가 장기적인 뇌 건강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장지방 관리,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정리해보면, 이번 연구에서는 내장지방·체지방률·지방량지수가 많을수록 혈관의 반사파 지표인 증강지수가 뚜렷하게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되었지만, 맥파속도나 중심맥압과는 분명한 관련이 없었고, 흔히 원인으로 의심되는 염증 지표(TNF-α, IL-6, VCAM-1)는 이 관계를 설명해주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던졌던 질문, "내장지방이 늘면 혈관이 얼마나, 어떻게 뻣뻣해지는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답은 이렇습니다.
적어도 이 연구가 관찰한 바로는, 내장지방은 혈관 전체를 균일하게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사파가 되돌아오는 방식(증강지수)에서 먼저 신호를 보내며, 그 이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염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체지방 관리가 덜 중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혈관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신호를 조기에 챙겨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실생활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신경 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허리둘레를 체중계 숫자보다 더 자주 확인해보기 (내장지방을 가장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 주 3~5회, 숨이 약간 가빠지는 정도의 걷기·자전거 타기 등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기
- 정제된 탄수화물과 과도한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채소·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기
- 건강검진에서 체성분 분석이나 혈압, 혈관 관련 검사를 받을 기회가 있다면 꼼꼼히 확인하기
다만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특정 연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결과이며, 개인의 혈관 건강 상태나 치료 방향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진단받고 결정하셔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Europe PMC(PMCID: PMC13634821)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