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로 발이 저린데, 정말 혈당 때문일까요?
당뇨를 오래 앓아온 분들 중에는 "요즘 발끝이 저리고 감각이 둔해졌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흔히 이런 증상은 혈당 조절이 잘 안 돼서 생기는 거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최근 중국 저장성의 한 병원에서 2형 당뇨 환자 5,646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허리둘레와 체중의 비율이 이 저림 증상, 즉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과, 유독 배만 나온 것은 우리 몸에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왜 유독 '뱃살'이 신경 문제와 연결되는지, 그리고 내 몸 상태를 어떻게 점검해볼 수 있는지까지, 이 연구가 보여주는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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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지방이 신경을 공격하는 이유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비만'이라고 다 같은 비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만은 몸 전체에 살이 붙는 전신 비만과, 배 주변에 집중적으로 지방이 쌓이는 복부 비만(내장지방형 비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동안 비만을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쓰인 지표는 체질량지수, 즉 BMI(키와 몸무게로 계산하는 값)였는데요, 이 연구는 BMI가 가진 한계를 지적합니다.
BMI는 몸무게가 지방 때문에 늘었는지, 근육 때문에 늘었는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체중은 비슷해도 몸 구성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같은 숫자로 묶어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허리-체중지수(Weight-adjusted Waist Index, WWI)라는 지표를 사용했습니다.
계산법은 간단합니다.
허리둘레(cm)를 체중(kg)의 제곱근으로 나눈 값입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의미는 명확합니다.
단순히 허리둘레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체중을 기준으로 배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지수가 높다는 것은 근육량은 상대적으로 적고 복부 지방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복부에 쌓인 지방이 신경에까지 영향을 줄까요?
논문에서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내장지방은 단순히 쌓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조직입니다.
내장지방세포는 TNF-α, IL-6 같은 염증 유발 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몸 전체에 가볍지만 지속적인 염증 상태(만성 저강도 염증)를 만들고,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킵니다.
이렇게 생긴 염증과 인슐린 저항성은 혈관의 안쪽 벽(혈관내피)을 손상시켜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만들고, 그 결과 말초신경, 특히 발처럼 심장에서 먼 부위의 신경에 공급되는 혈류가 줄어들게 됩니다.
신경은 산소와 영양분을 꾸준히 공급받아야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 공급이 부족해지면 신경을 이루는 길게 뻗은 가지(축삭)가 점차 손상되며 제 기능을 잃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이 진행되는 핵심 과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허리-체중지수로 확인한 구체적인 위험도
그럼 실제로 이 지표가 높을수록 발저림 위험이 얼마나 커질까요?
이 연구는 2024년 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유환 제2인민병원의 당뇨 관리센터를 찾은 환자 중 조건에 맞는 5,646명을 분석했습니다.
발 감각신경이 자극(진동, 온도 등)을 얼마나 잘 느끼는지를 측정하는 정밀 검사(진동감각역치 검사)를 통해, 전체 환자 중 1,554명(27.52%)이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즉 발저림·감각저하가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검사 방법은 이전 연구에서 민감도 85.19%, 특이도 88.68%로, 즉 실제로 병이 있는 사람을 제대로 찾아내고 없는 사람을 아니라고 판별하는 정확도가 높은 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진은 전체 환자를 허리-체중지수(WWI) 수치에 따라 가장 낮은 그룹(Q1)부터 가장 높은 그룹(Q4)까지 4개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이, 혈당, 혈압, 지질 수치 등 다른 영향 요인들을 통계적으로 보정한 뒤, 가장 낮은 그룹(Q1)을 기준으로 다른 그룹들의 위험도를 비교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오즈비(odds ratio)라는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면, 한 그룹이 다른 기준 그룹에 비해 특정 사건(여기서는 발저림)을 겪을 가능성이 얼마나 더 높은지를 비교하는 숫자입니다.
오즈비가 1이면 두 그룹의 위험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숫자가 클수록 기준 그룹보다 위험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Q1 그룹을 기준(1.00)으로 했을 때, Q2 그룹의 위험도는 1.32배(95% 신뢰구간 1.08~1.62), Q3 그룹은 1.91배(95% 신뢰구간 1.56~2.33), 그리고 가장 허리-체중지수가 높은 Q4 그룹은 무려 3.64배(95% 신뢰구간 2.97~4.46)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95% 신뢰구간이란, 이 연구 결과를 여러 번 반복했을 때 실제 참값이 그 범위 안에 있을 가능성이 95%라는 뜻으로, 그 범위가 1(위험이 같다는 기준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이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더불어 그룹이 높아질수록 위험도가 꾸준히 커지는 경향성(trend)도 통계적으로 뚜렷하게 확인되었습니다(p<0.001).
즉, 단순히 "뱃살이 많으면 위험하다" 정도가 아니라, 뱃살이 체중 대비 늘어날수록 위험이 계단식으로, 그리고 가파르게 커진다는 것이 숫자로 확인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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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계보다 정확한 지표, WWI가 밝혀낸 성별 차이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기존에 많이 쓰던 체질량지수(BMI)로도 충분히 이런 위험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진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ROC 곡선 분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ROC 곡선은 어떤 검사 도구나 지표가 실제로 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얼마나 잘 구별해내는지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쉽게 말해 '이 지표가 얼마나 정확한 구별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분석 결과, 허리-체중지수(WWI)는 체질량지수(BMI)보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더 잘 구별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단순히 체중과 키만 보는 것보다, 체중 대비 허리둘레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는 것이 발저림 위험을 가려내는 데 더 유용한 신호라는 뜻입니다.
또한 성별에 따른 차이도 확인되었습니다.
연구진이 성별을 기준으로 하위 분석을 진행한 결과, 허리-체중지수와 발저림 사이의 연관성이 여성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성별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었습니다(교호작용 분석 p=0.021).
교호작용이라는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는데, 쉽게 말해 "같은 지표라도 남성과 여성에게 작용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여성에게서 특히 허리둘레 관리가 신경 건강 측면에서도 더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내 허리둘레는 지금 안전할까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당뇨가 있는데 발이 저리다면, 그 원인이 꼭 혈당 수치 하나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체중 그 자체보다, 체중에 비해 허리둘레가 얼마나 나왔는지가 발 신경 건강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5,646명이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자료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허리-체중지수가 가장 높은 그룹은 가장 낮은 그룹보다 발저림 위험이 3.64배나 높았고, 이 지표는 기존의 체질량지수보다 더 정확한 구별 능력을 보였으며, 여성에게서 그 연관성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당뇨가 있으신 분이라면, 체중계 숫자보다 허리둘레를 함께 재보는 습관을 가지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줄자로 배꼽 높이의 허리둘레를 재고, 평소 체중과 함께 기록해두면 변화를 살펴보는 데 유용합니다.
또한 꾸준한 식이조절과 운동을 통해 복부 지방을 줄이는 것은 혈당 관리뿐 아니라 신경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발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지는 증상이 이미 느껴진다면, 이는 자가 진단으로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신경 전도 검사 등을 통해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여부를 전문의와 함께 확인하시고, 필요한 치료와 관리 방법에 대해 상담받으시길 권합니다.
※ 본 글은 Europe PMC(PMCID: PMC13635149)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