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인데 혈관은 멀쩡한 사람, 마른데 혈관이 안 좋은 사람, 왜 다를까요?
건강검진에서 "복부비만", "고혈압", "혈당 주의" 같은 소견을 받아보신 분들이라면 한 번쯔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나보다 체중이 더 나가는 사람인데 왜 저 사람은 혈관이 깨끗하다고 하지?"
반대로 체형은 마른데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영 좋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 중 하나로 최근 의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물질이 있습니다.
바로 오메틴-1(Omentin-1)이라는, 우리 뱃속 지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비슷한 물질입니다.
2026년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endocrinology에 실린 종합 리뷰 논문은 이 오메틴-1이 심장과 혈관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그리고 이 수치가 낮아졌을 때 우리 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정리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메틴-1이 정확히 무엇인지, 수치가 낮아지면 혈관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이 수치를 관리해볼 수 있는지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광고
오메틴-1, 도대체 어떤 호르몬인가요?
먼저 "아디포카인(adipokine)"이라는 개념부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우리 몸의 지방은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만 하는 창고가 아닙니다.
지방세포는 혈액 속으로 다양한 신호물질을 내보내는데, 이렇게 지방에서 분비되어 다른 장기와 소통하는 물질들을 아디포카인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지방이 몸의 다른 부위에 보내는 "편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디포카인 중에는 성격이 서로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티n(leptin)이나 레지스틴(resistin) 같은 물질은 비만할수록 오히려 수치가 올라가면서 염증을 키우고 인슐린 저항성(세포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신호를 잘 알아듣지 못해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는 상태)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메틴-1은 이와 반대입니다.
비만, 제2형 당뇨병, 고혈압, 관상동맥질환(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지는 질환) 환자에서는 오히려 오메틴-1 수치가 뚜렷하게 낮아져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즉 오메틴-1은 몸을 보호하는 쪽에 가까운 물질로, 수치가 낮다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은 신호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오메틴-1은 주로 내장지방(장기 주변을 감싸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지방)에서, 그중에서도 심장을 감싸는 지방(심외막지방)이나 복부 내 대망(omentum)이라는 조직에서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지방이라고 해서 지방세포 자체가 오메틴-1을 많이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아래 분자 수준 설명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오메틴-1이 부족해지면 혈관과 심장에서 벌어지는 일
그렇다면 오메틴-1 수치가 낮아졌을 때 우리 혈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논문은 오메틴-1이 심장과 혈관을 지키는 여러 경로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항동맥경화 작용입니다.
동맥경화란 혈관 안쪽에 지방 성분과 염증 물질이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현상으로, 마치 수도관 안쪽에 이물질이 조금씩 쌓여 물이 잘 흐르지 않게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입니다.
오메틴-1은 이러한 혈관 벽의 변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둘째, 인슐린 민감도 개선입니다.
앞서 설명한 인슐린 저항성이 심해지면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혈관 건강에도 부담을 줍니다.
오메틴-1은 세포가 인슐린 신호를 더 잘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셋째, 항염증·항산화 작용입니다.
염증이란 몸이 손상이나 자극에 대응해 내보내는 방어 반응인데, 이 반응이 과도하게 지속되면 오히려 혈관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산화 스트레스'란 몸속에서 활성산소라는 불안정한 물질이 쌓이며 세포를 손상시키는 과정으로, 쇠에 녹이 스는 것과 비슷한 화학반응이라고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오메틴-1은 이 두 과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넷째, 혈관내피 기능 개선과 심장 보호입니다.
혈관내피란 혈관 가장 안쪽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세포층으로, 혈액이 매끄럽게 흐르도록 돕는 코팅막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내피가 손상되면 혈관이 수축과 확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게 되는데, 오메틴-1은 이 내피 기능을 개선하고 심장 근육 자체를 보호하는 효과도 함께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고
분자 수준에서 본 오메틴-1의 정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메틴-1은 '인텔렉틴-1(intelectin-1)'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며, 313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분비성 당단백질(단백질에 당 성분이 붙어있는 형태)입니다.
분자량은 약 34킬로달톤(kDa, 단백질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으로, 혈액으로 분비될 때는 295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성숙한 형태로 작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방조직 안에서 오메틴-1을 만드는 주인공이 지방세포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지방조직 내 전체 오메틴-1 유전자 발현 중 지방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9%에 불과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지방조직 안에 함께 존재하는 '기질혈관세포'라는 비(非)지방세포들이 만들어낸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즉 지방이 많다고 해서 오메틴-1이 저절로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방조직의 구성 상태 자체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오메틴-1 유전자는 1번 염색체의 q22~23 영역에 위치하는데, 이 영역은 제2형 당뇨병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역이라는 점도 논문에서 언급되었습니다.
이는 오메틴-1이 단순한 보조 물질이 아니라, 대사질환과 심혈관질환을 잇는 유전적·생물학적 연결고리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 혈관 건강과 오메틴-1의 연결고리
이러한 혈관 보호 기전이 오메틴-1 논문 하나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환자들이 비만, 당뇨병, 좌심실 비대(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현상), 신장 기능 저하 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이는 오메틴-1 수치가 낮게 나타나는 질환군(비만, 당뇨, 고혈압, 관상동맥질환)과 상당 부분 겹치는 모습으로, 혈관을 위협하는 위험 요인들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고혈압이 오래 지속되면 심장 주변 혈관뿐 아니라 뇌의 혈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부검 연구를 종합한 또 다른 리뷰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고혈압이 있던 사람들에게서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 병리 소견(단백질 찌꺼기인 플라크와 신경세포 내부 구조물인 타우 엉킴)이 더 많이 관찰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처럼 고혈압이 일으키는 혈관 손상은 심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뇌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혈관을 보호하는 오메틴-1 같은 물질의 역할이 왜 중요하게 다뤄지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메틴-1 수치는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오메틴-1은 내장지방에서 주로 분비되어 동맥경화를 억제하고, 인슐린 민감도를 높이고,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고, 혈관내피와 심장을 보호하는 다재다능한 물질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수치는 비만, 당뇨, 고혈압, 관상동맥질환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점점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이번 리뷰 논문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던졌던 질문, "왜 어떤 사람은 비만해도 혈관이 괜찮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오메틴-1이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를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논문은 이미 발표된 여러 연구들을 모아 정리한 종합 리뷰이기 때문에, 오메틴-1 수치를 직접 재서 심혈관질환 위험을 진단하는 검사법이 당장 일상 진료에 쓰이는 단계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짚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논문에서도 일부 심대사 관련 약물이 오메틴-1 수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지만, 이는 아직 연구 단계의 내용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생활에서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은 있습니다.
오메틴-1이 주로 분비되는 내장지방은 복부비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방으로,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로 내장지방을 관리하는 것이 혈관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기존에 잘 알려진 사실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다만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구체적인 건강 수치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Europe PMC(PMCID: PMC13650535)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