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을 서너 개나 먹는데도 혈압이 안 떨어진다면,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병원에서 처방해준 혈압약을 하루에 세 알, 네 알씩 챙겨 먹는데도 집에서 혈압을 재면 여전히 140, 150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약을 더 늘려야 하나", "내 혈압은 왜 유난히 안 떨어지나"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국제 학술지 Cardiovascular Drugs and Therapy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여러 연구를 모아 정리한 연구) 및 메타분석(그 여러 연구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합쳐서 하나의 결론을 내는 분석 방법) 논문은, 바로 이렇게 약을 여러 개 먹어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약 '백스드로스탯(Baxdrostat)'의 효과와 안전성을 정리했습니다.
왜 약을 늘려도 혈압이 버티는 경우가 생기는지부터, 이 새로운 약으로 실제 혈압이 숫자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주의해야 할 부작용까지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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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성 고혈압, 왜 약을 먹어도 혈압이 안 떨어질까요?
의학적으로 '저항성 고혈압(resistant hypertension)'이란, 이용 가능한 서로 다른 계열의 혈압약을 세 가지 이상(그중 하나는 보통 이용뇨제) 충분한 용량으로 꾸준히 먹고 있는데도 혈압이 목표치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체 고혈압 환자 중 적지 않은 비율이 이런 상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논문은 저항성 고혈압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알도스테론 조절 이상'을 지목합니다.
알도스테론은 우리 몸의 부신(콩팥 위에 있는 작은 내분비 기관)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으로, 콩팥이 나트륨(염분)과 물을 얼마나 재흡수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알도스테론은 몸속 수분과 염분의 양을 조절하는 '저장 스위치'와 같습니다.
이 스위치가 필요 이상으로 자주 켜져 있으면, 몸속에 수분과 염분이 과도하게 쌓이고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량이 늘어나면서 혈압이 쉽게 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기존의 혈압약들은 주로 다른 경로(혈관을 넓히거나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방식)로 작용하기 때문에, 알도스테론이 문제의 핵심인 경우에는 약을 늘려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스드로스탯은 바로 이 알도스테론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억제하는 약입니다.
알도스테론은 'CYP11B2'라는 효소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우리 몸에는 이와 구조가 매우 비슷한 'CYP11B1'이라는 효소도 있습니다.
CYP11B1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에, 만약 약이 이 두 효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둘 다 막아버리면 몸에 꼭 필요한 코르티솔 생성까지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백스드로스탯은 CYP11B2를 CYP11B1보다 100:1의 비율로 훨씬 더 선택적으로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비슷하게 생긴 두 개의 자물쇠 중, 목표로 한 자물쇠 하나만 정확히 골라 잠그는 열쇠에 가깝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혈압이 얼마나 떨어졌을까요?
연구진은 2026년 3월까지 발표된, 성인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백스드로스탯과 가짜약(위약)을 비교한 무작위·이중맹검·위약대조 임상시험(연구에 참여한 사람도, 담당 의료진도 누가 진짜 약을 먹었는지 모르게 설계해 결과의 편향을 최소화한 믿을 만한 연구 방식)들을 찾아 종합했습니다.
BrigHTN, HALO, BaxHTN, FigHTN, Bax24라는 5개의 연구, 총 1,730명의 데이터가 포함되었습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결과는 '위약 대비 수축기 혈압(심장이 수축할 때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 혈압 수치 중 앞자리 숫자)이 얼마나 더 떨어졌는가'였습니다.
분석 결과, 백스드로스탯을 먹은 그룹은 위약 그룹보다 평균 6.90mmHg 더 많이 수축기 혈압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95% 신뢰구간 -10.25~-3.55, p<0.0001).
여기서 95% 신뢰구간이란, "진짜 효과가 이 범위 안에 있을 가능성이 95%"라는 뜻으로, 그 범위가 0을 포함하지 않으면(즉 전부 마이너스 쪽에 있으면) 효과가 우연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p값이 0.0001보다 작다는 것은, 이런 결과가 순전히 운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1만 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어서, 통계적으로 매우 믿을 만한 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효과는 복용량에 따라 차이를 보였습니다.
하루 2mg을 먹은 그룹에서 가장 큰 감소폭(-8.16mmHg, p<0.00001)이 나타났고, 1mg 그룹은 -6.06mmHg(p=0.010)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반면 가장 적은 용량인 0.5mg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p=0.14).
즉, 용량이 늘어날수록 혈압이 더 많이, 더 확실하게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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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혈압 도달률과 부작용, 그리고 방치하면 생기는 위험
단순히 혈압이 '조금' 떨어지는 것과, 실제로 '목표 혈압'에 도달하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느끼는 체감이 다릅니다.
이 연구는 수축기 혈압이 130mmHg 미만으로 떨어진 환자의 비율도 함께 분석했는데, 백스드로스탯을 먹은 그룹은 위약 그룹보다 이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오즈비, OR)이 2.70배 더 높았습니다(p=0.01).
오즈비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비교 대상보다 몇 배 더 높은가"를 나타내는 수치로, 1보다 클수록 그 일(여기서는 목표 혈압 도달)이 더 잘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다만 연구마다 이 효과의 크기 차이가 꽤 컸다는 점(I²=89%, 즉 연구 결과들끼리 서로 많이 다른 정도가 컸다는 뜻)은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완기 혈압(심장이 이완될 때의 압력, 뒷자리 숫자) 역시 2mg에서 -3.51mmHg(p<0.0001), 1mg에서 -2.55mmHg(p=0.03)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효과만큼 중요한 것이 안전성입니다.
알도스테론이 줄어들면 콩팥에서 칼륨을 내보내는 기능도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혈중 칼륨 수치가 높아지는 '고칼륨혈증'이 이 약의 주요 부작용으로 확인됐습니다.
칼륨은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도록 돕는 중요한 전해질(몸속에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미네랄)인데, 이 수치가 너무 높아지면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연구 결과, 백스드로스탯을 먹은 그룹에서는 8.9%가 고칼륨혈증을 겪은 반면 위약 그룹에서는 1.2%에 그쳤습니다(오즈비 5.98, p=0.008).
특히 위험한 수준인 혈중 칼륨 6.0mmol/L 초과는 백스드로스탯 그룹의 3.8%, 위약 그룹의 0.2%에서 나타났습니다.
다만 다행히도, 중대한 이상반응(병원 입원이 필요하거나 생명에 위협이 되는 부작용)이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늘어나지는 않았고(오즈비 1.35, p=0.37), 약으로 인한 사망 사례도 없었던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이런 저항성 고혈압을 그냥 두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도 다른 연구들을 통해 교차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연구(Journal of Human Hypertension)에서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이 일반 고혈압 환자보다 고혈압을 앓은 기간이 더 길고, 비만, 당뇨병, 좌심실비대(심장벽이 두꺼워지는 상태), 콩팥 기능 저하 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했습니다.
또 다른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고혈압이 있는 경우 뇌 조직 부검에서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변화(단백질 축적 등)가 더 많이 관찰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혀, 혈압을 제대로 조절하는 것이 심장과 콩팥뿐 아니라 뇌 건강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배경들을 보면, 저항성 고혈압을 해결할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왜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결론: 저항성 고혈압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약을 여러 개 먹어도 혈압이 잘 안 떨어지는 분들 중 상당수는 알도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원인일 수 있고, 이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선택적으로 막는 백스드로스탯이라는 약이 위약보다 평균 6.90mmHg의 수축기 혈압을 추가로 낮추고, 목표 혈압 도달 가능성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용량이 높을수록 효과도 크지만 고칼륨혈증이라는 부작용 위험도 함께 커지므로, 이 약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합한 것은 아니며, 정기적인 혈중 칼륨과 콩팥 기능 검사가 함께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 약의 심혈관 및 콩팥 관련 장기적인 결과를 확인하는 연구들이 아직 진행 중이어서, 임상에서 정확히 어떤 위치에 쓰이게 될지는 추가 연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처음에 던졌던 질문, "혈압약을 서너 개나 먹는데도 혈압이 안 떨어진다면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대한 답은, 결국 약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왜' 안 떨어지는지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 종류의 혈압약을 드시는데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알도스테론 관련 검사나 새로운 치료 옵션에 대해 담당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약의 변경이나 추가는 반드시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을 통해 결정해야 하며, 이 글은 특정 치료를 권유하거나 진단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837060)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