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일을 그만두는 시기도 당겨질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고혈압 진단을 받고 몇 년 지나 당뇨까지 겹치더니, 어느 순간 "더는 일을 못 하겠다"며 일터를 떠나는 분들 말입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몸에 쌓인 질환의 숫자 자체가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최근 중국 중년층 4,404명을 7년 가까이 추적한 연구가 바로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신장병처럼 의사에게 진단받은 심혈관대사질환(심장·혈관·대사와 관련된 질환들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실제로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숫자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부터, 실제로 수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 적용해볼 만한 부분이 있는지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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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쌓이는 질환이 왜 일자리에도 영향을 줄까 - 악순환의 구조
먼저 왜 질환의 개수가 늘어나면 일을 그만두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지, 그 흐름을 짚어보겠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질환이 하나둘 늘어나면, 몸은 이전과 같은 체력으로 움직이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병원 진료와 약 복용, 합병증 관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써야 하고, 통증이나 피로감 때문에 예전처럼 장시간 집중해서 일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결국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는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일을 그만두면 소득이 줄고, 직장을 통해 받던 의료 혜택이나 규칙적인 건강관리 기회도 함께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아있는 질환을 꾸준히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건강 상태는 다시 나빠지기 쉬운 여건이 만들어집니다.
즉, 질환이 늘어나는 것과 일을 그만두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흐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연구진은 이 흐름에 소득 수준이나 직무의 강도(앉아서 하는 일인지,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인지 등) 같은, 이번 조사에서 충분히 측정하지 못한 요인들도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즉 질환 개수만이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요인이 겹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위험이 커지나 - 오즈비 1.73이 의미하는 것
그렇다면 이 영향을 숫자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연구진이 내놓은 핵심 수치가 바로 "오즈비(odds ratio) 1.73"입니다.
오즈비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두 집단끼리 비교한 값입니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가능성과 뒷면이 나올 가능성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데, 여기서는 "질환이 하나 더 있는 사람"과 "그보다 질환이 하나 적은 사람"이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둘 가능성을 비교한 것입니다.
오즈비가 1.73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진단받은 질환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약 1.73배, 즉 73% 정도 더 높아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 옆에는 항상 "95% 신뢰구간 1.51~1.97"이라는 표현이 따라붙습니다.
신�지구간이란, 이 연구를 수없이 반복했을 때 진짜 값이 들어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범위를 뜻합니다.
범위가 1.51에서 1.97 사이에 있다는 것은, 최소로 잡아도 위험이 51% 이상 높아지고 최대로는 거의 2배 가까이 높아진다는 의미여서, 이 결과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결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결과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45~60세 중국 성인 4,404명을 대상으로 한 10,852건의 관찰 자료 속에서 실제로 346건의 건강 관련 퇴직 사례를 분석해서 얻은 값입니다.
나이, 성별, 교육수준, 직업 형태, 흡연, 음주, 체질량지수(체중이 키에 비해 얼마나 나가는지를 보는 지표입니다) 같은 요인들을 모두 통계적으로 고려한 뒤에도 이 관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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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개수가 쌓일수록, 조기퇴직률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나
오즈비는 "위험이 몇 배 커지는가"를 보여주는 값이지만, "실제로 몇 퍼센트의 사람이 일을 그만두었는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면 다른 지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누적발생률"이라는 값도 함께 계산했습니다.
누적발생률이란, 정해진 시점까지 전체 대상자 중 실제로 몇 퍼센트가 그 사건(여기서는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값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조사가 네 번째로 진행된 시점(대략 7년 차 전후)을 기준으로, 나이나 성별 등 조건을 맞춰(이를 "표준화"했다고 표현합니다) 계산한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습니다.
- 진단받은 질환이 0개인 경우: 누적발생률 6.4%
- 질환이 1개인 경우: 누적발생률 10.5%
- 질환이 2개인 경우: 누적발생률 16.6%
숫자로만 봐도 질환이 전혀 없는 경우보다 2개를 가진 경우, 같은 기간 동안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의 비율이 2배 이상(16.6%를 6.4%로 나누면 약 2.6배)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질환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이 비율이 단계적으로 뚜렷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결과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 민감도분석과 다른 연구들의 교차검증
통계 결과를 볼 때 항상 따라오는 질문은 "이 방법으로 분석했으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닐까?"라는 의심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민감도분석"이라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민감도분석이란, 분석 방법이나 계산 조건을 이것저것 바꿔보면서도 결론이 그대로 유지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같은 수학 문제를 다른 풀이법으로 다시 풀어봐도 똑같은 답이 나오는지 검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참여자별로 응답이 묶여서 생기는 통계적 오차를 보정하는 방법("클러스터링"), 응답자 집단의 특성이 전체 인구를 잘 대표하도록 조정하는 방법("가중치"), 그리고 설문에서 빠진 답변을 합리적인 추정으로 50번 반복해서 채워 넣는 방법("다중 대입") 등 여러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을 쓰든 질환 개수와 조기퇴직 사이의 관계는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이 결과가 특정 분석 방법 때문에 생긴 우연이 아니라, 비교적 안정적인 경향이라는 신뢰를 더해줍니다.
비슷한 맥락은 다른 연구들에서도 확인됩니다.
치료를 받아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을 다룬 연구에서는, 이런 환자들이 당뇨, 비만, 신장 기능 저하 같은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즉 고혈압은 혼자 오는 경우보다 다른 질환과 함께 겹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이번 연구에서 "질환 개수"가 늘어날수록 영향이 커진다고 본 설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고혈압이 뇌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검 연구 결과도 있어, 고혈압이 단순히 혈압 수치 문제에 머물지 않고 몸 여러 곳에 걸쳐 복합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질환 하나라도 미리 관리해야 하는 이유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병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일을 그만두는 시기도 당겨질까요?
이번 연구의 결과를 보면, 적어도 분석에 참여한 중년층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뚜렷한 신호가 확인되었습니다.
진단받은 심혈관대사질환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약 1.73배 높아졌고, 질환이 2개인 경우 0개인 경우보다 실제 누적발생률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 연구만으로 "질환이 있으면 반드시 일을 그만두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진도 직무 강도나 소득 수준처럼 측정하지 못한 요인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앞으로 다른 집단에서도 같은 결과가 재현되는지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결과가 주는 실생활의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비교적 흔한 질환 하나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단순히 수명이나 합병증 예방을 넘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혈압과 혈당 수치를 확인하고, 금연과 적절한 음주 조절, 체중 관리 같은 생활습관을 챙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직업 생활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구체적인 건강 상태에 대한 진단과 치료 방향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860028)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