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염식은 죽어도 못 지키겠는데, 칼륨만 챙겨 먹어도 혈압이 내려갈까요?
"음식 싱겁게 드세요, 소금 줄이세요."
고혈압 진단을 받아본 분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일 겁니다.
그런데 막상 국물도 못 마시고, 찌개도 밍밍하게 먹으라는 말을 몇 달씩 실천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소금을 억지로 줄이는 대신, 칼륨(포타슘)을 더 챙겨 먹으면 혈압이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떨어질까?"
마침 2026년 국제학술지 Circulation Research에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고혈압 환자 40명에게 6~9주 동안 칼륨 보충제를 먹였더니, 몸속에 숨어있던 나트륨이 실제로 빠져나가고 혈압이 내려갔다는 내용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인지 구체적인 수치로 짚어드리겠습니다.
고혈압도 두 얼굴이 있다? 본태성 고혈압과 알도스테론증
먼저 알아둘 게 있습니다.
고혈압이라고 다 같은 고혈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40명의 환자는 정밀검사를 거쳐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는 '본태성 고혈압(EH)'으로, 17명이 해당됐습니다.
이는 특별히 한 가지 원인을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가장 흔하게 보는 고혈압 유형입니다.
유전적 소인, 나이, 생활습관 등 여러 요인이 겹쳐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알도스테론증(hyperaldosteronism)'으로, 23명이 해당됐습니다.
알도스테론은 우리 몸의 부신(콩팥 위에 있는 작은 호르몬 분비 기관)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인데, 쉽게 말해 "몸에 나트륨과 물을 더 붙잡아두라"고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호르몬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분비되면, 몸이 계속 나트륨을 붙잡아두면서 혈압이 잘 안 내려가는 상태가 됩니다.
즉 같은 '고혈압'이라도 원인이 다른,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질환인 셈입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지는 다음 단계에서 바로 드러납니다.
우리 몸 근육 속에 숨어있는 나트륨 창고
우리가 흔히 "나트륨이 많다"고 하면 혈액 속 나트륨 수치나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나트륨 양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연구팀은 조금 다른 곳을 들여다봤습니다.
바로 '근육 조직'에 쌓여있는 나트륨입니다.
우리 몸은 나트륨을 혈액에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피부나 근육 같은 조직 안에도 저장해 둡니다.
마치 집안 곳곳의 수납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나트륨을 비축해두는 셈입니다.
연구팀이 참가자들의 근육 조직에 저장된 나트륨 양을 측정한 결과, 알도스테론증 그룹은 평균 24.67(표준편차 2.93) mmol/L, 본태성 고혈압 그룹은 평균 22.48(표준편차 3.37) mmol/L로 나타났습니다(P=0.023).
여기서 P값이란, 이 차이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실제로 의미 있는 차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는 지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알도스테론증 환자들은 본태성 고혈압 환자들보다 근육 속에 나트륨을 더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호르몬이 계속 "나트륨을 붙잡아라"라고 지시한 결과가 근육 속 나트륨 저장량으로 고스란히 나타난 것입니다.
칼륨을 6~9주 보충했더니 실제로 벌어진 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연구팀은 참가자 40명 전원에게 혈중 칼륨 수치에 맞춰 용량을 개인별로 조절한 염화칼륨(KCl) 보충제(스판케이 정)를 6~9주 동안 복용하게 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소금(나트륨) 섭취량 자체는 따로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짜게 먹는 습관은 그대로 두고, 칼륨만 추가로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를 확인한 실험이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24시간 동안 모은 소변 검사에서, 칼륨 배출량은 뚜렷하게 늘었지만 나트륨 배출량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즉 몸 밖으로 나가는 나트륨의 양 자체는 그대로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근육 속에 쌓여있던 나트륨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알도스테론증 그룹에서 근육 나트륨 함량이 평균 1.90mmol/L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95% 신뢰구간 -3.20~-0.60, P=0.005).
여기서 95% 신뢰구간이란 "진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범위"를 말하는데, 이 범위가 0(효과 없음)을 포함하지 않고 온전히 마이너스(감소) 쪽에 있다는 것은 이 감소가 우연이 아니라는 신뢰할 만한 근거가 됩니다.
또한 혈액 속 나트륨과 칼륨의 비율(Na/K ratio)도 두 그룹 모두에서 낮아졌습니다.
이 비율은 몸속 나트륨과 칼륨의 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값인데, 본태성 고혈압 그룹에서는 5.34 감소(95% 신뢰구간 -7.69~-2.99, P=0.000046), 알도스테론증 그룹에서는 7.02 감소(95% 신뢰구간 -9.04~-5.01, P=0.000000021)로 나타났습니다.
P값이 이렇게 아주 작은 숫자로 나올수록, 이 결과가 우연히 나왔을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하실 수축기 혈압(흔히 "위 혈압"이라고 부르는, 심장이 수축해 피를 짜낼 때의 압력)은 본태성 고혈압 그룹에서 평균 8.33mmHg(95% 신뢰구간 -14.55~-2.12, P=0.010), 알도스테론증 그룹에서 평균 7.35mmHg(95% 신뢰구간 -12.69~-2.01, P=0.008) 낮아졌습니다.
두 그룹 모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혈압 감소를 보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소금 섭취를 줄이지 않았는데도 칼륨을 보충하는 것만으로 근육 속에 갇혀있던 나트륨이 빠져나오고, 그 결과 혈압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칼륨이 세포 안에 저장돼 있던 나트륨을 밖으로 움직이게 만들어(mobilize), 몸속 나트륨과 칼륨의 병적인 불균형을 바로잡아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고혈압을 그냥 두면 안 되는 이유, 다른 연구들의 경고
이 연구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고혈압 관리를 소홀히 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이 다른 연구들을 통해서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체계적 문헌고찰(여러 연구를 모아 분석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사후 부검을 통해 뇌 조직을 살펴본 연구들에서 고혈압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의 병리적 변화(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는 정도 등)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습니다.
즉 혈압 관리는 단순히 심장이나 혈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인지기능과도 맞닿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혈압 환자의 10~15% 정도는 세 가지 이상의 혈압약을 써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상태에 놓여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비만, 당뇨, 신장 기능 저하 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관리가 더욱 까다롭습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약물치료 외에 칼륨 보충처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으면서 나트륨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교정해줄 수 있는 보완적 접근이 왜 주목받는지 이해가 됩니다.
물론 이번 연구는 40명이라는 비교적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했고, 무작위 대조군 없이 한 그룹 안에서 전후 변화를 비교한 연구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근육 나트륨 측정이라는 정밀한 방법으로 "칼륨이 실제로 몸속 나트륨 분포를 바꾼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염식이 힘들다면, 칼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소금을 억지로 줄이는 대신 칼륨을 챙기면 혈압이 내려갈까?"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나트륨 섭취량 자체를 줄이지 않아도 칼륨을 충분히 보충하는 것만으로 수축기 혈압이 7~8mmHg가량 낮아질 수 있다는 근거가 확인됐습니다.
이는 본태성 고혈압이든 알도스테론증이든 두 유형 모두에서 나타난 변화였습니다.
칼륨은 바나나, 감자, 시금치, 토마토, 아보카도, 콩류 등 다양한 식품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 식단에 이런 식품을 조금씩 늘려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것은 혈중 칼륨 수치에 맞춰 용량을 개인별로 조절한 '칼륨 보충제'였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신장 기능이 저하된 분이나 특정 혈압약(칼륨을 저류시키는 계열의 약물 등)을 복용 중인 분이 임의로 칼륨 보충제를 다량 섭취하면 오히려 고칼륨혈증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칼륨 섭취량을 늘리거나 보충제를 고려하실 때는 반드시 담당 전문의와 상담한 뒤, 자신의 콩팥 기능과 복용 중인 약물을 고려해 적절한 방법을 찾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저염식이 유일한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몸속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나트륨 저장고가 있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만 기억하셔도, 앞으로 혈압 관리를 대하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실 거라 생각합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803000)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