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5분 검사만으로 내 심장병 위험을 알 수 있을까?
혹시 병원에 가지 않고도, 마트나 약국, 회사 로비에서 손가락 끝 채혈이나 간단한 측정만으로 "당신은 앞으로 10년 안에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생길 위험이 높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실제로 영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병원 예약도, 긴 대기도 없이 지역사회 곳곳—마트, 도서관, 종교시설, 심지어 직장 안—에 간이 검사소를 차려놓고 4,256명의 성인에게 '헬시하트(Healthy Heart)'라는 즉석 심장 건강 검사를 해준 연구가 있었습니다.
이 검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검사, 즉 전문용어로는 '포인트 오브 케어(point-of-care)' 검사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피를 뽑아 검사실로 보내고 며칠을 기다리는 대신, 그 자리에서 몇 분 만에 콜레스테롤 수치나 혈압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간이 검사만으로 정말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검사를 받은 사람들 중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도 몰랐던" 위험을 발견했을까요?
이 글에서는 이 연구가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서, 어떤 수치로, 얼마나 많은 위험을 찾아냈는지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가 여러분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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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혈압계와는 다른, 이 검사가 재는 것들
먼저 이 검사가 무엇을 측정했는지부터 알아볼까요?
참가자들은 이 자리에서 총콜레스테롤 수치, 혈압, 체질량지수(키와 몸무게로 계산하는 비만도 지표, 흔히 BMI라고 부릅니다), 흡연 여부 등 심장 건강과 직결되는 정보를 측정받았습니다.
여기서 이 연구의 핵심 도구인 'QRISK3'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QRISK3는 나이, 성별, 혈압, 콜레스테롤, 흡연 여부, 체질량지수, 당뇨병 여부 등 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넣어서 "이 사람이 앞으로 10년 안에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을 겪을 확률이 몇 퍼센트인가"를 계산해주는 공식입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널리 쓰이는 공인된 계산법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QRISK3 점수가 10% 이상인 경우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했습니다.
즉 100명 중 10명 이상이 앞으로 10년 안에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겪을 것으로 예측되는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이 QRISK3 점수는 이미 심혈관질환을 한 번이라도 겪었던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점수는 '앞으로 처음 생길 위험'을 예측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체 참가자 중 이전에 심혈관질환을 겪은 적 없는 약 90%의 사람들에게만 이 점수를 계산했습니다.
실제 검사 결과: 나도 모르게 위험군이었을 확률
그렇다면 실제로 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이 연구의 주요 참가자 집단(연구팀은 이를 '기본 코호트'라고 불렀습니다, 평균 나이 49세, 남성 57%, 체질량지수 30 이상인 비만 인구가 31%를 차지했습니다)에서 나온 수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체 참가자 중 35%가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5.0mmol/L을 넘는 '높은 콜레스테롤' 상태였습니다. 이는 약 1,486명에 해당합니다.
- 10%는 현재 흡연 중이었습니다.
- 10%는 체중 감량 관리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는 기준에 해당했습니다.
- 19%는 고혈압 관리 서비스가 필요한 기준에 해당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혈압 관리 서비스 대상'이란, 측정된 혈압 수치가 전문적인 관리와 상담이 필요한 수준으로 높게 나온 경우를 뜻합니다.
- 그리고 앞서 설명한 QRISK3 점수를 계산할 수 있었던 사람들 중 20%(3,842명 중 784명)가 10% 이상의 고위험군으로 분류됐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담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시 풀어보면 이런 뜻입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혹은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히 이 검사를 받은 사람 5명 중 1명이 "당신은 10년 안에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겪을 가능성이 10% 이상입니다"라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처음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그동안 자신이 이런 위험에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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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지 않고 있던 고위험자 60%, 그리고 장소에 따라 달랐던 결과
이 연구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QRISK3 고위험군으로 확인된 784명 중 무려 60%(472명)가 검사 당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전문용어로 '지질강하제'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스타틴 계열 약물이 있습니다)을 전혀 복용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상태였는데도 절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아무런 예방적 치료를 받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검사를 진행한 장소에 따라 고위험자가 발견되는 비율이 크게 달랐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기본 코호트 외에도 두 개의 하위 집단을 따로 살펴봤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찾아간 '집중 방문(Targeted Outreach)' 집단 1,970명에서는 QRISK3 고위험 비율이 26%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직장 검진 형태로 진행된 '워크플레이스(Workplace)' 집단 756명에서는 고위험 비율이 6%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어떤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검사를 했는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직장인 집단보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건강관리가 취약했던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훨씬 더 많은 '숨은 고위험자'가 발견된 것입니다.
고혈압을 그냥 두면 심장을 넘어 뇌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견된 고혈압이나 높은 콜레스테롤을 방치하면 정말 심장에만 문제가 생길까요?
다른 연구들을 함께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여러 개의 개별 연구 결과를 한데 모아 정리하고 비교하는 연구 방법입니다)에서는 세상을 떠난 뒤 뇌를 직접 부검한 15건의 연구, 총 5,879명의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고혈압이 있던 사람들의 뇌에서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변화(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는 '플라크'나 신경세포 안에 엉킴이 생기는 '탱글' 같은 소견)가 더 많이 관찰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5건 중 4건(전체 분석 대상의 68%에 해당)의 연구에서는 고혈압과 이런 뇌의 변화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확인됐고, 또 다른 4건의 연구에서는 오히려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변화가 덜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즉, 고혈압을 방치하는 것이 심장뿐 아니라 뇌 건강, 나아가 치매 위험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또한 고혈압 환자 중 10~15%는 세 가지 이상의 혈압약을 써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상태에 놓여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고혈압을 앓아온 기간이 길고, 비만이나 당뇨병, 심장이 비대해지는 좌심실 비대, 신장 기능 저하 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일반적인 진료 외에도 24시간 동안 혈압을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활동혈압측정(ABPM)' 같은 정밀한 검사가 진단과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지역사회 검사에서 발견된 '19%의 고혈압 관리 대상자'라는 숫자가 단순히 혈압계 눈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방치할 경우 심장과 뇌 건강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호라는 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검사를 받아봐야 할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동네에서 5분 검사만으로 내 심장병 위험을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번 연구는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4,256명 중 20%가 그 자리에서 몰랐던 심혈관질환 고위험 상태를 발견했고, 이미 고위험군이었던 사람 중 60%는 아무런 예방 치료도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연구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개념 증명(proof-of-concept)' 단계의 연구입니다.
즉, 이런 방식의 간이 검사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 초기 단계 연구이며, 검사 후 사람들이 실제로 치료를 잘 받았는지, 그래서 장기적으로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줄었는지까지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연구팀도 이 결과가 앞으로 더 체계적인 후속 연구와 경제성 분석이 필요한 '가설을 만들어내는' 성격의 결과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인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특히 평소 병원에 잘 가지 않거나, 건강검진을 미뤄왔던 분이라면, 지역사회나 직장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혈압·콜레스테롤 측정 기회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다음과 같은 점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 총콜레스테롤, 혈압, 체질량지수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흡연 중이시라면 금연이 심혈관 위험을 낮추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 간이 검사에서 위험 신호가 나왔다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 정식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우시길 권합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검사나 수치는 진단을 대신할 수 없으며, 실제 진단과 치료 여부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동네에서 받은 5분짜리 검사 하나가 당장 병을 고쳐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검사가 "내 몸을 한 번 더 들여다볼 계기"가 되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809611)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