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슬리 속 숨은 성분, 혈압에 효과 있을까?
요리에 향을 더하는 파슬리, 식탁 위 셀러리, 잠들기 전 마시는 카모마일차.
이 평범한 식재료들에는 공통적으로 '아피제닌(Apigenin, APG)'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약리학 저널 Pharmacology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 이 아피제닌이 고혈압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실 겁니다.
정말 이 성분을 먹으면 혈압이 떨어질까요?
떨어진다면 구체적으로 몸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리고 "식품 속 성분이니 안전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아니면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아피제닌이 혈압에 작용하는 원리부터, 몸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느 정도까지 안전이 확인됐는지, 그리고 이 성분을 둘러싼 더 큰 그림까지 차례로 짚어드리겠습니다.
광고
아피제닌이 혈관을 넓히는 원리
혈압이 높아지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는 혈관이 좁게 조여져 있는 상태입니다.
혈관이 좁으면 같은 양의 피를 보내기 위해 심장이 더 강한 압력을 써야 하고, 그 압력이 바로 혈압으로 측정됩니다.
그래서 혈압을 낮추는 많은 방법들은 결국 '혈관을 얼마나 잘 이완시키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아피제닌은 'TRPV4/NO 경로'를 통해 혈관을 넓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름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실 텐데,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TRPV4는 혈관 벽을 이루는 세포에 있는 일종의 감지 센서입니다.
혈류의 변화나 압력 변화를 감지하면 이 센서가 켜지면서 세포 안으로 신호를 전달합니다.
이 신호를 받으면 혈관 세포는 산화질소(NO)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산화질소는 혈관을 둘러싼 근육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꽉 조여진 고무호스를 살짝 느슨하게 풀어주면 물이 더 편하게 흐르는 것처럼, 산화질소가 혈관 근육을 풀어주면 혈관이 넓어지고 혈압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아피제닌은 산화스트레스와 염증을 줄여주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산화스트레스란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활성산소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혈관 세포를 손상시키는 상태를 말합니다.
쇠에 녹이 스는 것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운데, 활성산소가 쌓이면 혈관 벽이 서서히 거칠어지고 약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염증 반응이 혈관 벽에서 지속되면 혈관이 점점 탄력을 잃고 딱딱해질 수 있는데, 아피제닌은 이런 산화·염증 반응을 완화해 혈관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논문은 아피제닌이 유전자 신호 조절을 통해 혈관과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것, 즉 '리모델링'을 막아준다고 설명합니다.
고혈압이 오래 지속되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거나 혈관 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몸이 높아진 압력에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입니다.
아피제닌은 이런 변화를 유도하는 유전자 신호를 조절해, 혈관과 심장이 원래의 건강한 구조를 더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몸속에 들어간 아피제닌은 어떻게 움직일까
기전을 이해했다면,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그럼 먹기만 하면 이 효과가 바로 나타날까?"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답은 조금 복잡합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아피제닌은 경구 생체이용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체이용률이란 입으로 먹은 성분이 실제로 혈액 속으로 흡수되어 몸속에서 쓰일 수 있는 비율을 뜻합니다.
아피제닌은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몸속에 들어가면 빠르게 분해(대사)되는 경향이 있어서, 먹은 양에 비해 실제로 혈액 속에서 이용되는 양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파슬리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그만큼의 비율로 혈액 속 아피제닌 농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흡수된 아피제닌이 몸 곳곳에 비교적 넓게 퍼진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에서는 아피제닌이 조직 분포가 넓고, 특히 신경을 보호하는 효과의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피제닌은 간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나, 세포 안팎으로 물질을 이동시키는 운송 단백질(transporter)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아피제닌을 많이 섭취할 경우 함께 먹는 다른 약물의 흡수나 분해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혈압약이나 다른 약을 복용 중이신 분들은 아피제닌이 풍부한 식품이나 보충제를 과량으로 섭취하기 전에 반드시 담당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비교적 안심할 만한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독성 연구에서 아피제닌은 체중 1킬로그램당 5000밀리그램까지 투여해도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일상적인 식품 수준에서 섭취하는 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양으로, 평소 식단을 통해 파슬리나 카모마일차 등으로 섭취하는 정도라면 안전성 면에서 큰 우려는 없는 수준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광고
장 속 미생물까지 바꾸는 아피제닌의 또 다른 힘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아피제닌의 작용은 혈관이나 심장에만 머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논문은 아피제닌이 장내 미생물(gut microbiota)에도 유익한 변화를 준다고 설명합니다.
장내 미생물이란 우리 장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 미생물들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것을 넘어서, 면역 기능과 혈관 건강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여러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지면 혈압 조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아피제닌이 장내 미생물을 유익한 방향으로 조절하는 효과도 함께 보고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아피제닌은 혈관을 직접 넓히는 작용, 산화·염증을 줄이는 작용, 유전자 신호를 조절하는 작용, 그리고 장내 미생물을 통한 간접적인 작용까지 여러 경로가 동시에 맞물려 혈압 관리에 기여할 수 있는 성분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고혈압 관리가 중요한 이유, 다른 연구들이 보여주는 경고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여러 경로로 혈압을 조절하는 성분이 주목받는 걸까요?
그 답은 고혈압을 방치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는 고혈압과 알츠하이머병의 관련성을 다룬 15편의 부검 연구(총 5879명)를 분석했는데, 이 중 4편(전체의 68%에 해당하는 3993명)에서 고혈압과 뇌 속 병리적 변화(플라크와 신경섬유 다발의 축적) 사이에 비교적 분명한 연관성이 확인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아직 모든 연구에서 일관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고혈압이 단순히 심장이나 혈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뇌 건강과도 맞닿아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고혈압 환자 중 10~15%가 세 가지 이상의 혈압약을 사용해도 혈압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상태에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고혈압을 앓은 기간이 길고, 비만, 당뇨, 좌심실 비대, 신장 기능 저하 같은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들을 함께 놓고 보면, 혈압 관리는 단순히 숫자 하나를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뇌와 심장, 신장까지 아우르는 전신 건강과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존 약물 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아피제닌 같은 식이 성분의 가능성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모마일차로 혈압을 낮출 수 있을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파슬리나 카모마일차 속 아피제닌이 정말 혈압에 도움이 될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아피제닌은 혈관을 넓히고, 산화·염증 반응을 줄이고, 심장과 혈관의 구조적 변화를 억제하고, 장내 미생물까지 유익하게 조절하는 등 여러 경로로 혈압 관리에 기여할 수 있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물실험에서 체중 1킬로그램당 5000밀리그램까지 투여해도 안전했다는 결과는 일상적인 식이 수준에서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뢰를 줍니다.
다만 이 모든 결과는 아직 세포 실험과 동물실험을 중심으로 한 예비적(preclinical) 증거라는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가 충분히 쌓인 것은 아니며, 경구 생체이용률이 낮다는 점도 실제 섭취 시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적인 한계로 이어집니다.
또한 약물대사효소나 운송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혈압약이나 다른 약을 복용 중이신 분들은 아피제닌이 풍부한 보충제를 임의로 다량 섭취하기보다는 평소 식단 속에서 파슬리, 셀러리, 카모마일차 등을 즐기는 정도로 접근하시는 것이 현실적인 활용법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고혈압의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하셔야 합니다.
식이 성분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이미 처방받은 혈압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평소 드시는 음식에 파슬리나 카모마일차를 조금 더 챙겨 넣는 정도의 작은 습관으로 받아들이시고, 혈압 관리의 중심은 여전히 정기적인 검진과 의사와의 상담에 두시길 권해드립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832459)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