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깜빡깜빡하는 게, 혹시 혈압 때문일까요?
요즘 들어 사람 이름이 잘 안 떠오르고, 방금 했던 말을 또 하게 되고...
이런 경험, 한 번쯤 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병원에 가서 기억력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데도 본인은 계속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상태를 의학적으로는 주관적 인지저하(SCD, Subjective Cognitive Decline)라고 부릅니다.
검사상으로는 정상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변화가 있는 단계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그냥 나이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아니면 치매로 가는 초기 신호일까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고혈압은 이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최근 이탈리아 몬자의 한 뇌 건강 클리닉에서 진행된 연구가 이 궁금증에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연구가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실제로 어떤 차이가 관찰되었는지, 그리고 최근 주목받는 혈액검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줄 수 있는지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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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은 왜 '기억력 문제'와 연결될까? - 뇌혈관과 신경퇴행의 관계
우리 뇌는 몸 전체 혈액의 상당 부분을 끌어다 쓰는, 산소와 영양이 아주 많이 필요한 기관입니다.
이 혈액을 뇌 구석구석까지 전달하는 통로가 바로 크고 작은 혈관들인데요, 혈압이 오랜 기간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이 혈관벽에 지속적인 부담이 가해지고, 특히 뇌 안의 가느다란 미세혈관이 손상되기 쉬워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2022년에 발표된 한 체계적 문헌고찰(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연구를 모아 체계적으로 분석한 논문, PMID 35758526)에서는 사후 부검 연구 15건, 총 5879명의 자료를 살펴본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생전에 고혈압이 있었던 사람들의 뇌에서,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적인 병리 소견인 '플라크'(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 조각들이 서로 엉겨 붙어 뇌 조직 사이에 쌓인 덩어리)와 '엉킴'(타우라는 단백질이 정상적인 형태를 잃고 서로 꼬여 신경세포 안에 쌓인 구조)이 더 많이 발견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연구마다 결과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고, 일부 연구에서는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한 사람들에게서는 오히려 이런 병리 소견이 덜한 경향도 관찰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고혈압 자체가 뇌 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꾸준한 관리를 통해 그 영향을 줄일 여지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혈압을 여러 약으로 관리해도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를 '저항성 고혈압'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경우는 비만이나 당뇨, 콩팥 기능 저하 같은 다른 건강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PMID 23985879).
이는 고혈압 관리가 단순히 숫자 하나를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건강 상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실제 연구에서 확인된 위험요인 - 뇌 건강 클리닉을 찾은 132명의 이야기
이번에 소개하는 연구는 유럽에서 최근 늘어나고 있는 '뇌 건강 서비스(Brain Health Service)'라는 클리닉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은 아직 치매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기억력이나 인지 능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치매 위험을 미리 평가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는 곳입니다.
연구진은 이 클리닉을 방문한 186명의 자료를 분석했고, 이 가운데 132명이 앞서 설명한 주관적 인지저하(SCD) 상태였습니다.
연구진이 이들의 생활습관과 건강 상태를 살펴본 결과, 가장 흔하게 발견된 위험 요인은 수면 문제, 흡연, 운동 부족, 그리고 고혈압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이라는 점인데요, 이는 타고난 유전자처럼 바꿀 수 없는 요인이 아니라, 생활습관 개선이나 꾸준한 치료를 통해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요인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치매를 연구하는 국제 학술위원회(랜싯 위원회)는 치매의 최대 45%가 이런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들을 관리함으로써 예방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번 연구에서도 그 배경 설명으로 이 수치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이 클리닉을 찾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나이나 유전자처럼 어쩔 수 없는 요인이 아니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요인들을 갖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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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로 미리 안다? - p-Tau217과 GFAP 수치로 본 차이
이 연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단순히 생활습관 위험 요인만 살펴본 것이 아니라 혈액검사를 통해 뇌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까지 들여다봤다는 점입니다.
연구진이 사용한 지표는 '혈장 p-Tau217'이라는 것인데요, 앞서 설명한 타우 단백질 중에서도 217번이라는 특정 위치에 인산기가 붙은 형태를 혈액에서 측정한 값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수치가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변화를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연구들이 이어지면서, 뇌척수액 검사나 뇌 영상 촬영 없이도 간단한 혈액검사로 위험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0.15pg/mL이라는 기준값을 두고, 이보다 높으면 'A+'(양성), 낮으면 'A-'(음성)로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주관적 인지저하(SCD) 참가자 중 32%가 A+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A+ 그룹은 A- 그룹보다 나이가 더 많았고, 기억력이나 주의력 등을 확인하는 인지 선별검사에서도 더 낮은 점수를 기록했는데요,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확인되었습니다(연구에서는 여러 항목을 동시에 비교할 때 우연히 나타날 수 있는 오차를 보정하는 FDR 보정을 거쳐 p값이 0.05 미만으로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여러 번 비교해도 이 차이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더 엄격하게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A+ 그룹은 'GFAP'라는 단백질 수치도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GFAP는 뇌 안에서 신경세포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별 모양의 세포(별아교세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반응할 때 증가하는 물질로, 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뇌 영상을 시각적으로 평가했을 때도 A+ 그룹에서 신경퇴행(신경세포가 서서히 기능과 구조를 잃어가는 변화) 소견이 더 뚜렷하게 관찰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k-평균 군집분석'이라는 통계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특징(위험 요인, 혈액 수치, 인지 점수 등)을 컴퓨터가 종합적으로 비교해서, 서로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동으로 그룹을 나눠주는 방법입니다.
그 결과 두 개의 그룹이 뚜렷하게 나뉘었는데요, 하나는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도 적고 생물학적 지표도 양호하며 인지 기능도 좋은 그룹, 다른 하나는 위험 요인이 많고 생물학적 지표도 좋지 않으며 인지 기능도 상대적으로 낮은 그룹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안심이 되는 부분은, 이렇게 혈액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사실을 참가자에게 알려주는 과정(공개, disclosure)이 큰 부작용 없이 잘 받아들여졌다는 점입니다.
A+와 A- 그룹 사이에 우울감이나 불안감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내 위험도를 미리 알게 되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대해, 투명하게 결과를 공유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잘 설계된다면 그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 혈압 관리와 조기 확인의 의미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꾸 깜빡깜빡하는 게 단순한 건망증인지, 치매로 가는 신호인지는 이 연구 하나만으로 완전히 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주관적으로 기억력 저하를 느끼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수면 문제, 흡연, 운동 부족, 고혈압처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혈액 속 p-Tau217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나이, 인지 검사 점수, GFAP 수치, 뇌 영상 소견에서 모두 일관되게 더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런 위험도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조기에 관리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다른 연구, 즉 고혈압이 알츠하이머병의 병리 소견과 연관될 수 있다는 결과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혈압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단순히 심장이나 혈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뇌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평소 혈압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수면의 질을 챙기며, 금연과 적당한 운동을 실천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실천 방법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소개한 내용은 하나의 연구 결과이며, 개인마다 건강 상태와 위험 요인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억력 저하가 걱정되신다면 자가진단에 머무르지 마시고, 반드시 신경과 등 전문의와 상담하여 정확한 평가를 받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809041)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