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부족하면 혈압도 위험해질까? - 9만 명 넘는 사람들의 5년 추적 결과
혈압 관리를 위해 나트륨(소금)을 줄이고, 체중을 관리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연"이라는 미네랄을 신경 써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연은 굴, 소고기, 견과류 등에 들어있는 미량 원소로, 상처 회복이나 면역력과 관련해서는 익숙하지만 "혈압"과 연결해서 생각해본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5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혈중 아연 수치가 낮은 사람들에게서 새롭게 고혈압이 생기는 비율이 뚜렷하게 높았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아연이 부족하면 고혈압 위험이 정확히 얼마나 더 올라가는 걸까요?
모든 고혈압에서 똑같이 영향을 주는 걸까요, 아니면 특정 상황에서 더 두드러지는 걸까요?
그리고 남녀에 따라 차이가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이 연구가 밝혀낸 구체적인 수치와 변화 양상을 하나씩 짚어보면서,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인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대규모 추적조사로 확인된 아연 부족과 고혈압의 첫 신호
이번 연구는 미국의 TriNetX라는 연구용 의료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했습니다.
TriNetX는 여러 병원의 실제 진료 기록을 모아놓은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로, 연구자들이 수만 명 단위의 환자 기록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연구팀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혈중 아연 수치를 측정한 성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연이 부족했던 그룹과 정상이었던 그룹을 나누어 5년 동안 누가 새롭게 고혈압 진단을 받는지 지켜봤습니다.
이런 방식을 "후향적 코호트 연구"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이미 쌓여있는 과거 의료기록을 거꾸로 되짚어보면서, 처음에는 고혈압이 없던 사람들 중 누가 나중에 고혈압이 생겼는지를 비교하는 연구 방법입니다.
여기서 아연 부족의 기준은 혈중 아연 농도 0.7µg/mL 미만이었고, 정상 그룹은 0.70~1.20µg/mL 범위였습니다.
그런데 두 그룹을 그냥 비교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연이 부족한 사람들이 원래 나이가 더 많거나, 다른 질환을 더 많이 갖고 있다면 그 차이 때문에 고혈압이 더 많이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연구팀은 "성향점수매칭"이라는 통계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나이, 성별, 기존 질환 등 여러 조건이 최대한 비슷한 사람들을 아연 부족 그룹과 정상 그룹에서 각각 짝지어, 오직 '아연 수치'라는 조건 하나만 다르게 만들어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마치 조건이 비슷한 쌍둥이를 찾아 짝지어 비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47,843쌍, 즉 약 9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데이터가 분석에 사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연이 부족했던 그룹은 정상 그룹에 비해 5년 이내에 새롭게 고혈압(1차성 고혈압)이 발생할 위험비(Hazard Ratio, HR)가 1.20으로 나타났습니다.
위험비란 두 그룹 사이에서 특정 사건이 발생할 위험을 비교한 수치로, 1.20이라는 것은 아연 부족 그룹에서 고혈압이 새로 생길 위험이 정상 그룹보다 약 20% 더 높았다는 뜻입니다.
이 결과의 95% 신뢰구간은 1.14~1.25였고, P값은 0.001 미만이었습니다.
신뢰구간이란 실제 위험 정도가 이 범위 안에 있을 것이라고 95% 확신할 수 있는 구간을 말하며, P값은 이 결과가 우연히 나왔을 가능성을 나타내는 값으로 0.05보다 작으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로 인정합니다.
즉 이 결과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신뢰할 만한 차이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고로, 1차성(본태성) 고혈압이란 특별한 원인 질환 없이 발생하는, 전체 고혈압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적인 유형의 고혈압을 말합니다.
원인 질환이 있는 '2차성 고혈압'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 위험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나옵니다.
연구팀은 1차성 고혈압뿐 아니라, 신장질환이나 호르몬 이상 등 다른 질병 때문에 생기는 "2차성 고혈압",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신장 합병증, 그리고 혈압이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급격히 치솟는 "고혈압 위기" 상황까지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아연 부족과의 연관성은 1차성 고혈압보다 이런 상황들에서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2차성 고혈압의 위험비는 1.82로, 아연이 부족한 그룹에서 2차성 고혈압이 발생할 위험이 정상 그룹보다 약 82% 더 높았습니다(95% 신뢰구간 1.45~2.29, P<.001).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신장 합병증의 위험비는 1.69였고(95% 신뢰구간 1.49~1.92, P<.001), 고혈압 위기의 위험비는 1.09였습니다(95% 신뢰구간 1.01~1.18, P=.028).
즉 아연 부족은 단순히 혈압이 조금 높아지는 것을 넘어, 원인이 뚜렷한 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고혈압, 그리고 심장이나 신장에 부담을 주는 합병증과도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고혈압 위기의 경우 위험비가 1.09로 상대적으로 작았고, 신뢰구간의 아래쪽 끝이 1.01로 1에 매우 가까웠다는 점은 이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보여줍니다.
아연이 너무 많아도 위험하다? J자형 곡선이 말해주는 것
여기서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소견이 있습니다.
연구팀이 아연 농도를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고혈압 위험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그 모양이 "J자형 곡선"으로 나타났습니다.
J자형 곡선이란 그래프로 그렸을 때 알파벳 J처럼 한쪽이 낮고 다른 한쪽이 다시 올라가는 모양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아연 농도가 정상 범위보다 낮을 때는 물론 고혈압 위험이 높아졌지만, 반대로 아연 농도가 정상 범위보다 높을 때도 다시 위험이 높아지는 양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즉 아연은 "부족한 것만"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어떤 영양소든 '무조건 많이 섭취하면 좋다'는 생각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취약했다 - 성별에 따른 차이와 다른 연구들의 목소리
연구팀은 이 연관성이 남성과 여성에서 다르게 나타나는지도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아연 부족과 1차성 고혈압 사이의 연관성은 남성에서 위험비 1.28, 여성에서 위험비 1.13으로, 남성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차이는 "상호작용 검정"이라는 통계적 방법으로 확인했을 때 P값이 0.021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유의미한 차이였습니다.
상호작용 검정이란 두 그룹(여기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나타난 차이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차이인지를 확인하는 분석 방법입니다.
이런 결과는 고혈압이라는 질환이 단순히 혈압 수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이나 다른 신체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다른 연구들에서도 고혈압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건강 문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을 분석한 한 연구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서 비만, 당뇨병, 신장 기능 저하 등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치료 과정에서 2차성 고혈압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절차로 꼽혔습니다.
이는 이번 연구에서 아연 부족이 2차성 고혈압과 더 강하게 연관되어 나타난 결과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의 사후 뇌 조직을 분석한 여러 연구를 종합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고혈압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 병리 소견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결과들이 보고되어, 고혈압 관리가 혈압 수치 자체를 넘어 전신, 나아가 뇌 건강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연,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혈중 아연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5년 이내에 새롭게 고혈압이 생길 위험이 정상 아연 수치를 가진 사람들보다 뚜렷하게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원인 질환이 있는 2차성 고혈압, 그리고 심장·신장 합병증에서 그 연관성이 더 크게 나타났고, 아연이 지나치게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많을 때 모두 위험이 높아지는 J자형 양상, 그리고 남성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성별 차이까지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아연 수치와 고혈압이 함께 나타나는 "연관성"을 보여준 것이며, 아연 부족이 고혈압을 직접 일으킨다는 인과관계까지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연구팀 스스로도 "아연 결핍을 교정하는 것이 실제로 고혈압 위험을 낮추는지는 앞으로 전향적 연구를 통해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결과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혈압 관리를 위해 나트륨 섭취나 체중, 운동만 신경 쓰고 있었다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아연을 포함한 미량 영양소를 충분히 챙기는 것도 함께 고려해볼 만한 부분입니다.
다만 임의로 아연 보충제를 과량 복용하는 것은 J자형 곡선에서 보았듯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므로 권장되지 않으며, 아연 수치가 걱정되신다면 혈액 검사를 통해 본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진단과 치료 방향에 대해서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혈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소금 하나만이 아닙니다.
오늘 살펴본 아연처럼,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작은 미네랄 균형도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연구가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습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798062)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