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약을 챙겨 먹는데도, 왜 "약 안 지키는 환자"로 분류될까?
병원에서 처방받은 당뇨약, 오늘도 잘 챙겨 드셨나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혈압약, 콜레스테롤약, 위장약까지 여러 개를 같이 먹고 계신 상황이라면, 스스로는 "그래도 대부분은 챙겨 먹는다"고 생각해도 의료 기록상으로는 "치료 순응도가 낮은 환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꽤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지역의 1차 의료기관(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병원·보건소에 해당하는 곳) 실제 진료 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앓고 있어 특히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 제2형 당뇨병 환자 약 6만 6천 명을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약을 제대로 안 챙기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이 더 그런 경향을 보이는지부터, 나에게도 해당되는 위험 요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법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치료 순응도란 정확히 무엇이고,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먼저 "치료 순응도(therapeutic adherence)"라는 말부터 풀어볼게요.
이건 단순히 "약을 먹느냐 안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가 처방한 대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을, 정해진 기간 동안 꾸준히 지키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약뿐만 아니라 식이조절, 운동 같은 자기관리 행동까지 포함됩니다.
당뇨병은 왜 특히 이 순응도가 중요할까요?
당뇨병은 우리 몸이 혈당(혈액 속 포도당 수치)을 스스로 잘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췌장에서 나오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 문제를 다룬 다른 연구에서도 인슐린 분비와 반응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뇨병의 핵심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태는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병이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약을 꾸준히 먹지 않으면 혈당이 들쭉날쭉해지고, 그 상태가 오래 쌓이면 눈, 신장, 신경, 심장혈관 등에 합병증이 찾아올 위험이 커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도 순응도가 떨어질수록 혈당 조절이 잘 안 되고, 입원이나 병원 이용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가 다룬 사람들은 일반적인 당뇨병 환자가 아니라 '고위험군'입니다.
마드리드 보건당국은 환자들이 앓고 있는 질환의 개수와 복잡도를 점수화해서(전문 용어로는 '조정 이환군 분류체계'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이 사람이 얼마나 여러 병을 한꺼번에 관리해야 하는가'를 매기는 등급표입니다), 상위 5% 안에 드는, 즉 가장 여러 질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을 '고위험' 환자로 분류합니다.
이 연구는 바로 이 고위험군에 속한 당뇨병 환자들만 따로 뽑아 순응도를 살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안 지키고 있었을까?
이제 궁금한 실제 숫자를 볼 차례입니다.
연구팀은 2021년 4월 30일 기준으로 마드리드 지역의 고위험 제2형 당뇨병 환자 67,746명 중 순응도 정보가 확인된 65,856명을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 중 45,669명, 비율로는 69.3%가 '비순응(치료를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대략 열 명 중 일곱 명 꼴입니다.
이 정도로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의료진의 관리가 특히 필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순응도가 낮게 나타났다는 건, 순응도 문제가 결코 일부 '의지가 약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순응 환자군에서는 다른 특징들도 함께 관찰되었습니다.
먼저 '다약제(polypharmacy)'라고 부르는, 즉 여러 종류의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비율이 비순응군에서 62.1%로, 순응군의 58.7%보다 더 높았습니다.
약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복용 시간과 방법을 헷갈리거나 깜빡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비순응 환자군이 오히려 병원을 더 자주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첫 1년간 1차 의료기관 방문 횟수가 비순응군은 평균 25.3회, 순응군은 평균 24.4회였습니다.
즉 "병원에 자주 안 가서 약을 못 챙긴다"는 단순한 설명은 맞지 않으며, 오히려 병원을 자주 다니면서도 처방된 치료를 꾸준히 지키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더 취약할까?
연구팀은 여러 요인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계 분석(다변량 분석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나이, 성별, 질환 유무 등 여러 조건을 동시에 놓고 "이 조건 하나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 순응도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를 계산하는 방법입니다)을 통해, 비순응과 독립적으로 관련된 요인들을 찾아냈습니다.
이때 결과를 나타내는 지표가 '오즈비(odds ratio)'인데요, 오즈비가 1보다 크면 그 요인이 있을 때 비순응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오즈비 1.5는 "그 요인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비순응이 될 가능성이 약 1.5배 더 높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가장 두드러진 요인은 호흡기 질환이었습니다.
천식이 있는 경우 오즈비 1.622,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오랜 흡연 등으로 폐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는 만성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경우 오즈비 1.571로, 조사된 요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이 밖에도 완화치료(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중점을 둔 돌봄)를 받는 경우 오즈비 1.352, 다약제 복용 오즈비 1.345, 허혈성 심장질환(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진 상태) 오즈비 1.137, 심부전 오즈비 1.072 등 심혈관계 질환들도 비순응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회적·행동적 요인도 확인되었습니다.
연간 소득이 1,800만 원 이하에 해당하는 소득 구간의 환자는 오즈비 1.245, 외국인 신분인 경우 오즈비 1.157, 흡연자인 경우 오즈비 1.102로 나타났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경우도 오즈비 1.054로 관련이 있었는데, 이는 마음의 상태가 꾸준히 자기관리를 이어가는 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밖에 고령(오즈비 1.008), 남성(오즈비 1.073), 연간 20회 이상 병원을 방문한 경우(오즈비 1.066)도 통계적으로 관련이 있었지만, 이런 요인들은 상대적으로 영향의 크기가 크지 않았습니다.
연구팀도 이 점을 두고, 순응도는 어느 한두 가지 원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는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질환들이 있으면 약을 더 놓치기 쉬울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왜 하필 호흡기 질환이나 심장 질환,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당뇨약 순응도까지 함께 떨어지는 걸까요?
이 연구 자체가 그 이유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합리적인 설명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런 질환들을 함께 가진 사람은 당뇨약 외에도 흡입기, 심장약, 항우울제 등 관리해야 할 치료가 훨씬 많아집니다.
앞서 설명한 '다약제'와 자연스럽게 겹치는 부분입니다.
관리해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그중 일부를 놓치기 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둘째, 다른 연구에서는 당뇨병이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2형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여러 인지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수행 능력을 보이고, 뇌의 구조적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이번 연구의 비순응 결과를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고령·고위험 환자에게 있어 복잡한 치료 계획을 매일 정확히 기억하고 실행하는 일 자체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셋째, 우울증이 있는 경우 순응도가 낮아지는 경향은 여러 만성질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어 온 현상입니다.
마음이 지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꾸준히 자기관리를 이어가는 동기 자체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연구 결과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가족은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보면, 고위험 제2형 당뇨병 환자 열 명 중 일곱 명 정도가 치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천식·COPD 같은 호흡기 질환, 심장질환, 다약제 복용, 완화치료, 저소득, 우울증 등을 함께 가진 경우 그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입니다.
이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약을 잘 챙겨 먹으세요"라는 잔소리가 아닙니다.
순응도 문제는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여러 질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부담, 복잡한 복용 일정, 경제적 여건, 정신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연구팀 역시 이런 다요인적 특성을 감안해 진료 현장에서 순응도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환자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약물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복용 중인 약을 한 번에 정리해서 표로 만들어보거나, 요일별·시간대별 약통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진료 때마다 "지금 먹고 있는 약이 너무 많거나 복잡하지는 않은지" 의료진과 함께 점검해보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호흡기 질환이나 심장질환, 우울감을 함께 겪고 계신 분이라면, 이런 상태 자체가 순응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계신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소개한 오즈비 수치들은 통계적으로 확인된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특정 질환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약을 안 챙기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이 연구는 한 시점의 자료를 분석한 횡단면 연구(마치 특정 순간을 찍은 사진 한 장처럼, 한 시점의 상태를 살펴본 연구 방식)이기 때문에, 어떤 요인이 순응도 저하의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관련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본인이나 가족의 복약 상태, 처방 조정,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관리는 반드시 담당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매일 약을 챙기는데도 왜 비순응 환자로 분류될까?"라는 물음의 답은, 순응도라는 것이 단순히 '오늘 약을 먹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질환·경제 상황·심리 상태가 얽혀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결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와 가족의 처방전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관리해야 할 약이 너무 많거나 복잡하지는 않은지 이번 기회에 점검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본 글은 Europe PMC(PMCID: PMC13590293)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