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약도 잘 먹고 식단도 지키는데, 왜 혈당이 안 잡힐까요?
당뇨병으로 약을 처방받으신 분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꽤 계십니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약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단 것도 최대한 줄이고, 운동도 나름 열심히 하는데 정기검진 때 확인하는 '당화혈색소' 수치가 좀처럼 원하는 만큼 내려가지 않는 경우요.
이럴 때 "내가 뭘 더 잘못하고 있나" 싶어 속상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최근 학술지 Acta Diabetologica에 실린 한 연구는, 우리가 미처 의심하지 못했던 곳에서 힌트를 찾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 쓰는 플라스틱 용기, 통조림 캔 안쪽 코팅에 들어있는 '비스페놀'이라는 화학물질입니다.
이 연구가 왜 이런 물질에 주목했는지, 실제로 혈당 수치와 얼마나 관련이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무엇을 점검해볼 수 있는지까지 차근차근 짚어드리겠습니다.
비스페놀이 뭐길래 혈당까지 흔들 수 있을까
먼저 '비스페놀'이라는 이름부터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비스페놀A(BPA)와 비스페놀S(BPS)는 플라스틱을 단단하고 오래가게 만들어주는 화학물질로, 생수병이나 통조림 캔 안쪽 코팅, 영수증 용지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BPA가 인체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BPA 대신 BPS를 쓰는 제품들도 많아졌습니다.
이런 물질들은 '환경호르몬' 또는 '내분비교란물질'이라고도 불립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우리 몸속 호르몬은 세포에게 "지금 이렇게 반응해줘"라고 신호를 보내는 일종의 편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비스페놀류는 이 편지함에 비슷하게 생긴 가짜 편지를 끼워 넣어서, 세포가 신호를 헷갈리게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 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연구팀은 경구용 혈당강하제(먹는 당뇨약)로 치료받고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 382명을 대상으로, 혈액 속 BPA와 BPS 농도를 ELISA라는 정밀한 혈액검사 방법으로 직접 측정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설문지로 식습관을 조사하는 방식(Connor 식이조사)으로는 이 두 물질의 혈중 농도를 제대로 추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통조림을 얼마나 먹었으니 비스페놀 노출이 이 정도겠지"라고 짐작하기가 어렵고, 실제로는 혈액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연구 수치로 보면: BPS와 당화혈색소, 정말 관련 있었을까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평균 나이 63.68세(표준편차 ±10.52), 평균 당화혈색소는 7.43%(표준편차 ±1.36)였습니다.
여기서 '당화혈색소(HbA1c)'라는 용어를 잠깐 풀어드리겠습니다.
우리 혈액 속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높을수록 이 헤모글로빈에 포도당이 달라붙는 양도 늘어납니다.
적혈구의 수명이 약 2~3개월이기 때문에, 당화혈색소 수치를 재보면 최근 2~3개월 동안의 평균 혈당이 어느 정도였는지 마치 성적표처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뇨병 관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연구팀은 '다변량분석'이라는 통계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이·성별·인종처럼 내가 바꿀 수 없는 요인과 체질량지수(BMI)·식습관·운동량·약물순응도·비스페놀 농도처럼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요인을 동시에 넣고, 각 요인이 다른 요인들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당화혈색소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따로따로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요리에 양념을 넣었을 때, 최종 맛에 각 양념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하나씩 분리해서 계산해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먼저 나이·성별·인종 같은 바꿀 수 없는 요인만 보정했을 때, BPA는 당화혈색소와 뚜렷한 관련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BPS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련을 보였습니다(β계수 = 0.14, p = 0.045).
여기서 'β계수(베타계수)'는 그 요인이 한 단위 늘어날 때 결과값(여기서는 당화혈색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양수(+)면 같이 올라간다는 뜻이고, 음수(-)면 반대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즉 혈중 BPS 농도가 높을수록 당화혈색소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p값'은 이 결과가 단순히 우연히 나왔을 가능성을 나타내는데, 보통 0.05보다 작으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p=0.045는 이 기준을 겨우 통과한 수치입니다.
같은 모델에서 약물순응도 역시 당화혈색소와 관련이 있었습니다(β계수 = -0.12, p = 0.048).
즉 처방받은 약을 얼마나 빠짐없이 챙겨 먹었는지도, 이 물질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영향을 보였습니다.
참고로 이 연구에서는 '전자약물모니터'라는 장치를 이용해 환자가 실제로 약을 언제, 얼마나 꺼내 먹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했습니다.
콜레스테롤·포화지방 섭취, 그리고 다른 연구들은 뭐라고 말할까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연구팀은 이번에는 식습관, 운동량, BMI, 비스페놀 농도 같은 '바꿀 수 있는 요인'까지 모두 포함해서 다시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과가 조금 더 세밀해졌습니다.
이 모델에서는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 섭취(β계수 = -0.14, p = 0.045), 그리고 약물순응도(β계수 = -0.16, p = 0.012)가 당화혈색소와 관련된 요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콜레스테롤·포화지방 섭취가 많을수록 오히려 당화혈색소가 낮게 나타났다는 결과가 다소 의아하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이 결과 하나만으로 "콜레스테롤을 많이 먹으면 혈당 관리에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연구팀도 이를 식습관 전반의 복합적인 패턴 속에서 나타난 통계적 연관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콜레스테롤이라는 물질 자체를 조금 더 이해해두면 도움이 됩니다.
다른 연구들을 보면, 콜레스테롤은 무조건 나쁜 물질이 아니라 우리 몸의 세포막을 튼튼하게 유지하고, 성호르몬이나 비타민D 같은 물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원료로도 쓰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콜레스테롤은 부족해도 문제, 지나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물질이며, 우리 몸이 여러 기능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복잡한 물질이라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식습관·생활습관 요인들을 모두 함께 고려했을 때도 BPS의 영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결론적으로 "BPS 농도는 나이 같은 개인적 요인, 식습관, 약물순응도처럼 혈당 조절에 이미 잘 알려진 요인들을 함께 고려하고 난 뒤에도 당화혈색소와 양의 관련성을 보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약을 잘 챙겨 먹고 식단도 신경 쓰는 것과는 별개로, 비스페놀S 노출 자체가 당화혈색소에 독립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당화혈색소 관리, 무엇을 더 확인해봐야 할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이번 연구는 제2형 당뇨병 환자 382명을 대상으로, 약도 잘 챙겨 먹고 식단 관리도 하는데 당화혈색소가 원하는 만큼 잡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혈중 비스페놀S 농도를 지목했습니다.
BPA는 유의미한 관련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BPS는 나이·성별 같은 요인을 보정해도(β=0.14, p=0.045), 그리고 식습관과 약물순응도까지 고려해도 독립적인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동시에 약을 꾸준히 챙겨 먹는 것(약물순응도)과 콜레스테롤·포화지방을 포함한 전반적인 식습관 역시 당화혈색소와 뚜렷하게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앞서 던졌던 질문, "약도 잘 먹고 식단도 지키는데 왜 혈당이 안 잡힐까"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 연구는 하나의 가능한 답을 제시합니다.
통조림 음식이나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통한 비스페놀 노출이 기존에 알려진 약물·식습관 관리와는 별개로 혈당 조절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연구는 한 시점에 여러 요인을 함께 측정한 관찰 연구이기 때문에, "비스페놀 노출을 줄이면 당화혈색소가 반드시 낮아진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하나의 참고할 만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 적절합니다.
실생활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은 이렇습니다.
처방받은 약은 정해진 시간에 빠짐없이 복용하고, 통조림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직접 데우는 습관은 피하며, 가능하다면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활용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식단 조정이나 약물 변경, 그리고 당화혈색소 관리 전반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신 후 결정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번 연구 결과 역시 개인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766133)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