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으로 병원 다니시는 분, 이 위험도 검사 결과 믿으세요?
병원 만성질환 클리닉(당뇨병, 고혈압처럼 오랫동안 관리해야 하는 병을 보는 외래를 흔히 이렇게 부릅니다)에 다니시다 보면, 의사 선생님이 "심장병 위험도가 몇 퍼센트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같은 날, 같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도 어떤 계산기로 재느냐에 따라 "고위험군"이 되기도 하고 "저위험군"이 되기도 한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인도의 한 대학병원 만성질환 클리닉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세 가지 서로 다른 심장병 위험도 계산기를 동시에 적용했더니, 결과가 크게 엇갈렸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지,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실생활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까지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심장병 위험도 계산기, 대체 무엇을 재는 걸까요?
'심장병 위험도 계산기'란 나이, 성별,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당뇨병 여부, 흡연 여부 같은 여러 정보를 입력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사건이 생길 확률이 몇 퍼센트다"라고 계산해주는 공식입니다.
비유하자면 내비게이션 앱과 비슷합니다.
도로 상황, 거리, 신호등 개수 같은 정보를 넣어서 "도착까지 30분 걸립니다"라고 예측하는 것처럼, 심장병 위험도 계산기도 여러 건강 정보를 넣어 "10년 안에 위험이 몇 퍼센트다"라고 예측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내비게이션 앱마다 도로 정보를 다르게 계산해서 예상 도착 시간이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듯이, 심장병 위험도 계산기도 만든 기관과 사용하는 공식이 다르면 같은 사람을 두고도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 도구를 비교했습니다.
- 프래밍햄 위험점수(FRS): 미국 프래밍햄이라는 마을 주민들을 오랫동안 추적 관찰해서 만든,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계산기입니다.
- ACC/AHA ASCVD 위험도 계산기: 미국심장학회와 미국심장협회가 개발한, 비교적 최신 기준을 반영한 계산기입니다.
- WHO/ISH 위험도 예측 도구: 세계보건기구와 국제고혈압학회가 만든 것으로, 콜레스테롤 검사 결과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설계된 것이 특징입니다.
같은 200명인데, 계산기마다 결과가 이렇게 달랐습니다
이 연구는 '전향적 관찰연구'로 진행됐습니다.
어려운 말처럼 보이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연구팀이 환자에게 특별한 치료를 새로 시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병원에 다니고 있는 환자들의 정보를 그대로 기록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켜본 연구라는 뜻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200명의 평균 나이는 54세였고, 남성이 63.5%로 더 많았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참여자의 96%가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고, 33.5%는 고혈압, 16%는 현재 흡연자였습니다.
즉 애초에 심장병 위험 요인을 여러 개 가진,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만한 분들이 모인 집단이었습니다.
이 200명에게 세 가지 계산기를 각각 적용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ACC/AHA ASCVD 계산기: 18%가 고위험군으로 분류
- 프래밍햄 위험점수(FRS): 20.5%가 고위험군으로 분류
- WHO/ISH 도구: 단 0.5%만 고위험군으로 분류
당뇨병 환자가 대부분인, 애초에 심장병 위험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집단인데도 WHO/ISH 도구는 200명 중 단 1명만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같은 사람들을 놓고도 어떤 계산기를 쓰느냐에 따라 고위험군으로 판정되는 사람 수가 최대 40배 가까이 차이가 난 셈입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 – 계산기들의 '일치도'를 들여다보니
이런 차이가 우연인지, 아니면 계산기들이 체계적으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카파 통계'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카파 통계는 두 검사(또는 두 사람)의 판정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숫자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비유하자면, 두 명의 선생님이 같은 답안지를 채점했을 때 두 사람이 매긴 점수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카파 값이 0에 가까우면 두 채점자의 판정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고, 1에 가까울수록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0.4~0.6 사이면 '중등도 일치', 0.2~0.4 사이면 '약한(경미한) 일치'로 해석합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ACC/AHA ASCVD와 FRS: 카파 0.541 (중등도 일치)
- ACC/AHA ASCVD와 WHO/ISH: 카파 0.305 (약한 일치)
- FRS와 WHO/ISH: 카파 0.314 (약한 일치)
세 결과 모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였습니다(P값이 0.001보다 작다는 것은, 이 결과가 우연히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뜻입니다.
보통 이 값이 0.05보다 작으면 '우연이 아니다'라고 판단합니다).
즉 ACC/AHA와 FRS는 그나마 서로 비슷한 판정을 내리는 편이지만, WHO/ISH는 이 두 계산기와 상당히 다른 판정을 내리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특히 WHO/ISH는 유독 대부분의 사람을 저위험군으로 분류하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위험도 오판이 위험한 이유 – 다른 연구들이 보여주는 것
그렇다면 이런 계산기 간의 차이가 왜 중요할까요?
만약 실제로는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군인데 계산기가 저위험군으로 잘못 분류한다면, 약물치료나 생활습관 개선 같은 적극적인 관리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 참여자들처럼 당뇨병과 고혈압을 함께 가진 분들의 경우,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위험 관리를 소홀히 했을 때의 결과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 가지 이상의 혈압약을 써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는, 이런 환자들이 고혈압을 앓은 기간이 길고 비만, 당뇨병,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변화(좌심실비대), 콩팥 기능 저하를 함께 겪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위험 요인이 여러 개 겹칠수록 정확한 위험도 평가와 꾸준한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혈압은 심장뿐 아니라 뇌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부검을 통해 뇌 조직을 직접 살펴본 여러 연구를 종합한 한 리뷰에서는, 고혈압이 있었던 사람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뇌세포 사이에 쌓이는 비정상적인 단백질 찌꺼기)와 타우 엉킴(신경세포 내부의 구조가 꼬여버리는 변화)이 더 많이 관찰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뇌 병리 소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한 경우 이런 변화가 덜했다는 결과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물론 이 분야의 연구들은 대상자 특성이나 연구 방법이 저마다 달라 결과가 일관되지는 않지만, 혈압 관리가 심장뿐 아니라 뇌 건강까지 폭넓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런 배경을 함께 놓고 보면, 심장병 위험도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일이 단순히 숫자 하나를 확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심장병 위험도는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요?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병원에서 알려주는 심장병 위험도 결과를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
이번 연구가 보여준 것은 계산기 자체가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계산기마다 특성과 한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프래밍햄 위험점수와 ACC/AHA ASCVD 계산기는 서로 비교적 비슷한 결과를 내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WHO/ISH 도구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을 저위험군으로 분류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여러 위험 요인을 함께 가진 분이라면, 단 하나의 계산기 결과만으로 "나는 괜찮다"고 안심하기보다는, 담당 의사와 함께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흡연 여부 등 여러 지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기적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아 수치 변화를 기록해두기
- 위험도 계산 결과가 낮게 나왔더라도, 당뇨병·고혈압·흡연 등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다면 방심하지 않기
- 금연, 규칙적인 운동, 나트륨 섭취 줄이기 같은 생활습관 관리를 꾸준히 병행하기
다만 이 글에서 소개한 내용은 하나의 연구 결과이며, 개인의 심장병 위험도 평가와 치료 방향은 반드시 담당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결정하셔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PubMed(PMID: 42788450)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