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잘 쓰는 어르신, 기억력도 더 좋을까?
요즘 부모님 댁에 가면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우리 어머니는 키오스크로 주문도 잘 하시고, 영상통화도 능숙하신데, 옆집 어르신은 스마트폰 잠금화면도 어려워하신다." 그런데 혹시 이 차이가 단순히 '기계를 다루는 손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력이나 판단력 같은 인지기능 자체와도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요?
최근 중국의 한 도시에서 60세 이상 어르신 6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가 바로 이 질문에 답을 시도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디지털 리터러시)이 실제로 인지기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만약 관계가 있다면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해 연결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부터, 우리 부모님이나 나 자신에게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까지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디지털 활용 능력이 뇌 건강과 연결되는 이유
먼저 '왜'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것이 인지기능과 관련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를 사용하려면 화면을 읽고 이해하고, 여러 단계의 메뉴 중 원하는 것을 찾고, 실수했을 때 다시 시도하는 등 여러 인지적 활동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연구진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원보존이론(Conservation of Resources theory)'이라는 심리학 이론을 인용했는데, 쉽게 풀면 이런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자원(시간, 능력, 자신감, 인간관계 등)을 잘 활용해서 새로운 자원을 얻으려 하고, 한 가지 자원을 얻으면 그것이 다른 자원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되어 점점 자원이 불어나는 선순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마치 저금통에 돈을 조금씩 모으면 그 돈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도 이런 '자원'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게 되면 정보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다는 자신감(자기효능감)이 생기고, 단체 채팅방이나 영상통화로 사람들과의 교류(사회참여)가 늘어나며, 어려운 일이 생겨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마음의 힘(심리적 회복탄력성)도 함께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가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심리사회적 자원들이 다시 인지기능을 지지해주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조사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수치들
이론은 그렇다 치고, 실제 조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연구팀은 참가자 630명에게 디지털 리터러시 설문, 자기효능감·사회참여·심리적 회복탄력성 설문, 그리고 인지기능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검사인 MMSE(간이정신상태검사)를 함께 시행했습니다. MMSE는 날짜를 말해보기, 간단한 계산을 해보기, 방금 들은 단어를 기억해서 말해보기 등으로 구성된 검사로, 점수가 낮을수록 기억력이나 집중력 같은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번 연구 참가자들의 평균 점수는 25.71점(표준편차 3.38)이었는데, 일반적으로 24점 미만이면 경도인지장애 가능성을 의심해보는 기준선으로 알려져 있어, 이 조사의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는 정상 범위에 속했습니다.
분석 결과, 디지털 리터러시 점수와 인지기능 점수 사이에는 상관계수(r) 0.246이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련성이 나타났습니다(P<0.01). 상관계수란 두 항목이 함께 움직이는 정도를 -1부터 1까지의 숫자로 표현한 것으로, 0에 가까우면 관련이 거의 없고 1에 가까우면 한쪽이 오를 때 다른 쪽도 뚜렷하게 오른다는 뜻입니다. 0.246은 강한 관련성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연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수준의 일관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구조방정식모형(SEM)이라는 통계 기법을 이용해 디지털 리터러시가 인지기능에 미치는 '전체적인 연관성의 크기'를 계산했는데, 그 값은 0.347이었습니다(95% 신뢰구간 0.258~0.417). 여기서 95% 신뢰구간이란, 이 연구를 100번 반복했을 때 95번 정도는 그 결과값이 이 범위 안에 들어올 것이라는 통계적 표현으로, 범위가 좁고 0을 포함하지 않을수록 결과를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지기능을 지켜주는 세 가지 숨은 경로
여기서 이 연구가 특히 흥미로운 지점이 나옵니다. 연구진은 디지털 리터러시가 인지기능과 연결되는 '전체 경로'를 두 갈래로 나누어 분석했습니다. 하나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곧바로 인지기능과 연결되는 '직접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효능감·사회참여·심리적 회복탄력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사회적 요인을 거쳐서 연결되는 '간접 경로(매개 경로)'입니다.
매개효과란 쉽게 말해 "A가 B에 영향을 줄 때, 그 영향력의 일부가 C라는 다리를 거쳐서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이 체중 감량에 영향을 줄 때, 그 일부는 '운동 → 식욕 변화 → 체중'이라는 다리를 거칠 수 있는 것처럼요.
분석 결과, 전체 연관성 중 60.8%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인지기능과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었고, 나머지 39.5%는 세 가지 심리사회적 요인을 거쳐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39.5% 안에서도 기여도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자기효능감을 거치는 경로가 전체 효과의 16.4%로 가장 컸고, 사회참여를 거치는 경로가 13.0%,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거치는 경로가 10.1%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즉,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능력이 좋아지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경로가 세 갈래 중 가장 큰 비중으로 인지기능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성질환 관리와 함께 봐야 하는 이유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이 연구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인지기능과 관련된 여러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이 인용한 2020년 랜싯 치매위원회(Lancet Commission)의 보고에 따르면, 전체 치매 사례의 약 40%는 살면서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조절 가능한 요인 목록에는 디지털 활동이나 사회적 고립뿐 아니라 고혈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연구들에서도 이런 관련성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부검 자료를 분석한 한 체계적 문헌고찰(15개 연구, 총 5,879명 대상)에서는, 고혈압이 있던 사람들의 뇌에서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적인 변화로 알려진 단백질 침착(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과 신경섬유 엉킴이 더 많이 관찰되는 경향이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이 관련성이 아직 모든 연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혈압 관리가 뇌 건강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또한 세 가지 이상의 혈압약을 써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치료저항성 고혈압'을 가진 분들은 당뇨병이나 신장 기능 저하 같은 다른 건강 문제를 함께 가진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혈압 관리 자체가 전반적인 건강 관리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배경을 함께 놓고 보면,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디지털 리터러시'는 인지건강을 지키기 위한 여러 조절 가능한 요인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익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기보다, 혈압 같은 기존 건강 관리와 함께 병행할 때 의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어르신이 기억력도 더 좋을까?"라는 질문에, 이번 연구는 "그럴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한 시점에 조사한 단면 연구(cross-sectional study)이기 때문에, "디지털 기기를 잘 쓰면 인지기능이 좋아진다"는 인과관계까지 단정할 수는 없고, 반대로 인지기능이 좋은 분들이 디지털 기기를 더 잘 익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은 균형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인 힌트는 분명합니다. 부모님이나 나 자신이 디지털 기기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단순히 '기계 조작법 습득'을 넘어서 자신감을 키우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늘리고, 마음의 회복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어려운 기능을 한 번에 다 가르치려 하기보다, 영상통화 걸기처럼 작은 성공 경험을 자주 만들어드리기
- 가족 단체 채팅방, 동네 커뮤니티 모임 앱 등 사람과의 교류로 이어지는 디지털 활동을 우선 권해드리기
- 혈압, 혈당 등 기존 만성질환 관리도 함께 챙기기
다만 기억력 저하나 인지기능 변화가 걱정되신다면, 이는 반드시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의와의 상담과 정확한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글의 내용은 건강 관리에 참고할 수 있는 연구 정보일 뿐,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Europe PMC(PMCID: PMC13585908) 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